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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한장

태국 크라비의 아름답고 독특한 해변

by 누피짱 2008. 4. 24.


탑섬과 모섬을 잇는 모랫길


며칠 전 독자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여행을 좋아해 꾸준히 기사를 읽고 있는데, 가기 어려운 곳 말고 가깝지만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란이나 크로아티아, 타히티 같은 곳은 참 가기 힘들다. 아무래도 여행초보들에겐 좀 생소하다. 하여 이번 달엔 조금 쉬운 곳을 골랐다. 안다는 사람 다 알고, 여행 좋아하면 한번쯤 들러봤을 만한 곳, 태국이다.

태국의 크라비는 신혼여행객들을 중심으로 요즘 뜨고 있는 곳이다. 관광객은 유럽인들이 80%를 차지한다. 일본이나 중국 한국인은 드물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신혼여행객인데 요즘 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

크라비의 바다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얼추 10년 전이다. 그때 사진 한 장에 맘이 흔들렸다. 바닷빛이 푸른 물감에 우유를 약간 섞은 듯뽀얀 푸른색이었다. 몰디브나 타히티 말고도 이런 바다가 있었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지난해 크라비를 찾았는데 바닷빛은 생각보다는 좋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서 옛날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푸껫 보다는 낫다. 물론 놀기도 좋다.


푹 쉬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포다섬은 최고의 휴식처다.

크라비의 자연은 70년대 푸껫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오염이 덜 됐다. 대신 리조트는 푸껫 수준이다. 요즘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좋은 리조트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물가는 그리 싸지 않다.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다.




프라낭 낙조크라비엔 해변이 수없이 많다. 딱 여기가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다마다 특징이 있다.
크라비에서 제법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곳은 프라낭이다. 프라낭을 처음 봤을 때 거제 해금강을 떠올렸다. 해안 절벽이 마치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프라낭 해변 절벽의 높이는 50m는 족히 돼보인다. 절벽 표면에는 로프처럼 생긴 바위기둥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 보면 바위에 기생하는 식물의 줄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 돌덩이다. 동굴 속의 석순이나 석주처럼 생겼다.

왜 이런 모양을 했을까? 암석에 석회암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바닷물이나 빗물에 녹아 흘러내리면서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 앞에는 거대한 바위섬이 하나 솟아 있다. 카약으로 바위섬까지 한 번 다녀오는 데 불과 30분밖에 안 걸린다. 이 바위섬의 이름이 해피 아일랜드. 이 일대에서 카약이나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름 그대로 ‘해피’하다.

프라낭 해변 절벽 아래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이곳에 남근을 닮은 나무 상이 서 있다. 대체 왜 이곳에 남근을 세워뒀을꼬? 바위건, 나무건 생김새가 신비스러우면 전설 한토막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프라낭에도 그럴싸한 전설이 있다.

유래는 이렇다. 수백년 전 말레이시아 공주 두 사람이 바닷길을 헤쳐오다 난파를 당해 죽었다. 그 뒤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한 태국 어부가 꿈에서 두 공주를 봤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나무로 남근을 깎아 바쳤더니 고기가 잘 잡혔다는 얘기다. 이후 어부들은 출어를 나서기 전에 남근 앞에서 풍어를 빌고 있다는 스토리다.

이 내용은 남근공원이 있는 삼척 해신당과 영락없이 똑같다. 삼척의 한 바닷가에 혼인을 앞둔 처녀가 살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애바위에서 미역을 따다가 그만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마을엔 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을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깎아 바친 뒤 고기가 잘 잡혔다는 얘기다.

태국이건 한국이건 간에 ‘생산’을 관장하는 것은 여자다. 여자를 달래기 위해 ‘남근’을 세웠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합일을 통해 풍요를 기원했다는 뜻이다.


썰물 때에는 물길이 열리는 탑섬과 모섬. 두 섬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꼭 바다 위를 걷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 공주라면 이슬람교도였을 텐데 남근설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어부들의 토속신앙과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프라낭 해변의 남근 전설은 이채롭다. 주변에는 야생원숭이들도 많다. 야생원숭이들은 우리의 거지비둘기와 비슷하다. 열대 과일이나 열매보다는 관광객들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진 상태. 먹을 게 없으면 해변의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

프라낭 해변의 절벽으로 올라가는 산책로도 있다. 전망대까지는 약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이 절벽에 오르면 프라낭과 만나오 등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초보자들을 위해 절벽 클라이밍 강습도 한다. 절벽에 이미 자일을 설치해두고 전문가들이 옆에서 도와주는데, 초보자들도 한번 해볼 만하다.

프라낭 옆에 붙어 있는 라일레이 비치는 기암절벽이 말발굽처럼 해변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이 해변 역시 바다가 좋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프라낭과 라일레이도 좋지만 하이라이트는 모섬과 탑섬이다. 모섬과 탑섬은 무인도다. 크라비 앞바다는 물이 그리 맑지 않지만 30분만 나가면 눈부신 산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리조트마다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운영하는 데 일종의 피크닉이라고 보면 된다.

일단 풍경이 독특하다. 배를 타고 나가다 보면 희한한 모양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섬은 거북이처럼 생겼고, 영락없이 닭을 닮은 섬도 있다. 기기묘묘한 모양은 여수 남해안의 백도와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태국정부는 크라비 일대를 해양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피크닉으로 많이 찾는 섬은 탑섬과 모섬, 포다 섬 등 10여 개 정도다. .탑섬과 모섬은 썰물 때에는 물길이 연결된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진도 앞바다와 비슷하다. 길이는 짧지만 산호바다라 물빛은 좋은 편. 물이 빠질 무렵이면 두 섬을 오가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꼭 바다위를 걷는 것 같다. 단점은 해변의 산호모래가 굵다는 것. 아직 풍화가 덜 돼 깨진 산호가루가 많다. 바다빛깔이 고와 스노클링을 하고 한나절 놀기에는 최고다. 빵 한 조각만 들고 바다로 들어가면 나비고기들이 순식간에 몰려든다. 포다섬은 조금 더 넓다. 숲도 좋아 피크닉 하기에는 최고다.

포다섬은 선탠족들의 천국이다. 빵과 햄, 닭고기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온 유럽의 여인들이 가슴을 다 드러낸 채 선탠을 즐긴다. 아이들은 모래밭 귀퉁이에 나무를 꽂아 배구를 즐긴다. 푹 쉬고 싶은 여행자들에겐 이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크라비 도심도 독특하다. 도심은 대천 해수욕장처럼 생겼다. 해변은 드넓고 뒤편에는 크고 작은 상가들이 이어져 있다. 이곳 시내에서 모섬, 탑섬 가는 배를 빌려탈 수 있다. 배주인들은 대부분 붉은 조끼와 푸른 조끼 등 각기 다른 조끼를 입고 있다. 조끼마다 번호가 붙어있다. 바다도 철저하게 구획이 나뉘어 있어 아무 데나 탈 수 없다는 뜻이란다. 그러고 보면 세상 어느 곳이나 텃세가 있고 구역이 있나 보다.


크라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클럽 순례다. 푸껫이나 파타야처럼 클럽이 많지는 않지만 프라낭이나 만나오 해변, 도심에 크고 작은 바들이 많다. 술값은 맥주 한 병에 2000~3000원 수준이다.

만나오 해변의 경우 희한하게도 바닷가 한가운데 왕버들처럼 생긴 나무가 박혀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오는 버드나무를 떠올리면 된다. 이 나무의 이름은 타마린드다. 만나오 해변의 경우 밤이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로큰롤 바도 있고, 아프리카 스타일의 바도 있다. 인터넷카페도 있다. 평상에서 반쯤 누워서 술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다. 술집거리 귀퉁이에는 어김없이 태국 마사지 클럽이 있는데 퇴폐적이지는 않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딱이다.

만나오는 리조트가 많은 까닭에 손님들이 대부분 외국인이다. 현지인들은 배를 타고 퇴근해 버린다. 동양인 남자는 해외에서 인기가 없지만 크라비에서는 제법 ‘부킹’도 된다. 러시아 여인들이 보드카를 들고 와서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할 정도. 어쨌든 바다 좋고, 공기 좋고, 별 많은 해변에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가슴도 갈대처럼 흔들리기 십상이다.

태국엔 아직도 숨겨진 여행지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곳, 바로 크라비였다.




푸껫 팡아만에서 86km, 방콕에서는 8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방콕과 푸껫에서 들어간다. 방콕에서는 타이항공이 주 4편 크라비행 항공편을 운항한다. 푸껫에서는 차로 간다. 아무래도 타이항공으로 방콕으로 간 다음 들어가는 게 낫다. 푸껫행 직항편은 전세기라서 국내선으로 갈아탈 때 할인 혜택이 없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거리. 인천~방콕은 6시간~6시간 30분.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크라비는 환전소가 많지 않다. 국내에서 또는 방콕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좋다.

크라비 현지에는 라야바디를 비롯, 쉐라톤 등 약 30여 개의 리조트가 있다. 특급 리조트는 하룻밤에 20만~30만원이 넘을 정도로 고가. 보통 고급 리조트 내에선 제트스키, 바나나 보트 같은 동력스포츠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현지 리조트 상품을 이용할 경우 아일랜드 호핑이나 해양 레저스포츠 프로그램이 옵션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노하우다.

크라비 시내는 푸껫 파통비치의 5분의 1 정도의 크기로 보면 된다. 크라비는 인구 40만 명의 중급도시. 자유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해변을 찾아가게 된다. 자유여행을 통해 라일레이해변이나, 프라낭 해변을 찾을 경우 현지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야 한다. 롱테일 보트는 일종의 택시. 10명 정도의 여행자들을 모아 떠나는데 보통 80~100바트 정도 한다. 2~3명이 갈 경우 2~3배 이상 돈을 줘야 한다. 태국관광청(02)779-5417

글·사진/최병준기자(경향신문)
출처 :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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