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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한장

'눈을 뗄 수 없었어' 황홀한 기차여행

by 누피짱 2008. 4. 24.


사진제공/비아레일

출발지 재스퍼, 도착지 밴쿠버. 탑승 목적은? 기차여행

창에서 눈을 떼는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지금, 여기가 이 여행의 목적지니까.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했다면 기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빠르지도, 싸지도 않다.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기차로 73시간50분, 제일 싼 티켓 563캐나다달러. 비행기를 타면 5시간 250달러면 된다. 속도와 가격을 희생하고 얻은 것은 평생 가슴에 사무칠 풍경. 오후 3시30분 재스퍼역을 출발한 기차는 바로 로키산맥의 준봉 사이로 접어들었다.

자리에 가방만 던져놓고 기차 끝으로 달려갔다. 마지막량 열차엔 앞·뒤·천장에 유리가 달린 2층 돔카(Dome Car)가 달려 있다. 이미 만석이었다. 하긴,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4467㎞ 중에서도 재스퍼부터 밴쿠버까지의 860㎞ 풍경이 가장 좋다. 특히 재스퍼역부터 3시간 동안은 창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기차가 꼬리를 뿜으며 로키산맥을 넘는다. 시속 50㎞밖에 안된다는 것이 고마운 구간이다. 중턱에 케이블카가 있는 휘슬러산을 지나 기차는 옐로헤드 고개로 진입한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옐로헤드 고개는 앨버타주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경계인 동시에 시간대가 바뀌는 곳입니다….”

해발 1131m의 옐로헤드 고개는 3000m가 훌쩍 넘는 로키의 준봉들 사이로 난 길이다. 옛날 원주민들이 이 길로 로키산맥을 넘었고, 유럽에서 들어온 모피무역상들이 뒤를 이었다. 그 길을 기차로 넘는다.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호수가 눈높이로 지나간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들은 이렇게 에메랄드 빛이다.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산이 로키산맥의 상징인 롭슨 산. 산 머리의 만년설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기차는 동쪽으로 달린다.

어떻게 이 험준한 산맥에 철로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 당초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현 로키산맥의 관광 거점인 밴프에서 온천이 발견된 것은 1882년. 철도회사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곳을 온천 휴양지로 개발하고, 전국의 부자들을 기차로 실어나르기로 했다. 4년 뒤 생긴 밴프 스프링스 호텔의 ‘스프링스’는 ‘온천’이란 뜻. 유럽의 고성을 닮은 고급호텔은 곧 로키의 상징이 됐다. 1911년엔 로키 관광의 또다른 중심지인 재스퍼에도 철로가 놓였다. 1925년 지은 재스퍼역사는 캐나다 ‘근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부자’들은 부지런히 로키를 찾았지만, 철도회사는 1차 세계대전으로 닥친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도산했다.

철로의 역사는 100여년, 지금 앉아 있는 열차의 역사도 50년이 넘는다. 1955년 만들어져 수차례의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당시엔 달리는 특급호텔이었겠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좁고 낡았다. 좌석 종류는 5가지. 우리나라와 같은 일반 좌석, 침대차, 유럽 열차처럼 문이 달린 작은 객실 형태의 싱글룸, 더블룸, 트리플룸이 있다.

객실은 하룻밤 50여만원이란 가격에 비해 ‘럭셔리’하지 않다. 싱글룸은 좌석과 변기가 마주보고 있다. 밤엔 벽에서 매트리스를 꺼내 침대로 만들어 준다. 개인 화장실이 달린 더블룸은 낮엔 팔걸이 의자 2개, 밤엔 2층 침대로 바뀐다. 가로·세로 2m가 조금 넘는 좁은 객실이지만 세면대, 옷걸이, 선풍기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열차 로고가 찍혀 있는 비누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승무원이 문을 두드렸다. 이 객실 전담이니 불편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불러달란다.

갑갑한 객실보다는 공용 공간인 파크카가 기차 여행에 더 어울린다. 기차의 끄트머리, 돔카와 라운지가 달린 객차다. 부지런히 달려오는 철로를 보고, 밖을 내다보고,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신다.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다.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 중이라던 캐나다인 션은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은퇴한 노인들이 여행삼아 타는 노선”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하고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액티비티 룸은 봄방학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침엽수림 사이로 난 강을 따라 열차는 달렸다. 해가 지고,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지도대로라면 여기쯤이 클리어워터 호수다.

오후 10시50분. 기차는 캠프룹스에 도착했다. 재스퍼~밴쿠버 구간의 유일한 정거장이다. 기차에 비치된 안내서엔 ‘황금을 찾아 로키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전진한 이들이 만든 정착촌’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선로 사이에 들어앉은 역사는 달랑 방 한칸이었다. 일없이 열차를 따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돔카로 돌아가서 밤하늘을 구경할까, 침대로 ‘변신’한 객실로 돌아가 잠을 잘까. 내일 아침엔 열차 안에서 해뜨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밴쿠버 도착 시간은 오전 7시50분이다.

재스퍼~밴쿠버 기차여행은 캐나다 로키산맥을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다. 기차에 앉은 채로 로키산맥을 넘으며 3시간에 걸쳐 주변 절경을 본다. 비용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로키 여행이 2번째거나, 색다른 여행을 좋아하거나, 특별한 기념일이라면 시도해 볼 만하다.

◇ 노선
재스퍼~밴쿠버 구간은 ‘캐내디언’ 라인으로 불리는 토론토~밴쿠버 구간의 일부다. 로키산맥을 제대로 보려면 재스퍼 출발, 밴쿠버 도착 방향으로 타야 한다. 재스퍼역에서 오후 3시30분 출발, 밴쿠버역에 이튿날 오전 7시50분 도착한다. 반대 방향은 로키 구간을 야간에 통과한다. 운행시간 17시간20분.

◇ 가격
재스퍼~밴쿠버 일반 좌석 기준 170캐나다달러(약 13만7700원). 성수기엔 227달러(18만3900원)로 올라간다. 6월1일부터 10월21일까지 성수기 요금이 적용된다. 침대칸 비수기 430달러(34만8400원) 성수기 683달러, 싱글룸 비수기 552달러(44만7200원), 성수기 876달러. 더블룸 비수기 828달러(67만2600원), 성수기 1314달러. 요금은 1인 기준. 세금 별도다. 침대칸 이상에서는 저녁·아침식사와 음료가 포함된다..

◇ 시설
싱글룸 이상에는 객실 내 화장실·세면대가 설치돼 있고, 비누·수건·구강청정제가 비치돼 있다. 샤워부스는 객차당 하나씩. 커피와 간단한 음료는 돔카·라운지가 있는 파크카에서 마실 수 있다. 식사는 식당칸을 이용한다. 전채·메인·디저트·커피가 순서대로 나온다. 열차를 예약할 때 식사도 함께 예약해야 한다..비행기 기내 반입 사이즈보다 큰 가방은 객실에 갖고 들어갈 수 없다. 화물칸에 부쳐야 한다. 기차를 타기 전 짐 정리를 해둘 것. 전 객차가 금연 열차로 운행된다. 흡연은 캠프룹스 역에서만 가능하다.

◇ 이용방법
비아레일 홈페이지(www.viarail.ca), 비아레일 한국어 홈페이지(www.viarailcanada.co.kr)에서 예약·결제할 수 있다. 2명이 여행한다면 ‘로맨스 바이 레일’ 패키지(www.viarail.ca/romancebyrail)도 이용할 만하다. 더블룸 2개를 터서 하나의 객실로 만들어준다. 퀸사이즈 침대, 생화, 초콜릿, 샴페인 등을 준다. 패키지 전체가 비수기 1706달러(138만6500원)로 2명이 일반 더블룸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가격이다. 성수기엔 3554달러로 올라간다.
글 : 최명애기자
출처 : [경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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