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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한장

필리핀 엘니도 '럭셔리 vs 실속파' 즐기기

by 누피짱 2008. 4. 24.


동남아엔 휴양리조트가 많긴 하지만 필리핀의 엘니도만큼 세상의 때가 덜 묻은 곳도 드물다. 엘니도는 필리핀 남서부 팔라완 제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 바쿠잇 군도 일대를 일컫는다. 2억5000만년 된 석회암 절벽과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작은 섬 45개로 이뤄져 있다. 한때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곳으로 ‘니도’는 스페인어로 ‘둥지’라는 뜻이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이 섬을 발견했을 때 제비들이 높은 석회암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데서 유래했다. 엘니도는 과거 고급 휴양지였다. 신혼부부들이 수상방갈로 식으로 지어진 호화 리조트를 많이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려는 ‘가난한 배낭족’도 많다. 리조트 대신 작은 호텔에 머물며 알뜰하게 엘니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천혜의 자연과 더불어 현대적인 시설과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원한다면 미니록(Minilock)과 라겐(Lagen) 섬에 위치한 엘니도 리조트가 제격이다.

미니록 리조트와 라겐리조트는 텐노츠(10 knots)라는 일본계 회사가 운영하는 일종의 자매 리조트다. 각각 객실 수가 43개, 51개에 불과한 데다 직원도 각각 90~100명 정도로 소수를 위한 1 대 1 서비스가 가능하다. 리조트가 섬 하나를 독점하는 구조 덕에 고립감과 특별함이 더하는 맛이 있다.

짐작되듯 비용은 만만치 않다. 시기와 방의 종류, 사람 수에 따라 미니록은 1인당 하루 17만~25만원, 라겐은 23만~36만원 정도다. 여기에는 숙박비는 물론 식사, 해양 스포츠 비용 및 장비 대여료가 모두 포함돼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편안한 휴식을 선택한 가족들과 신혼부부들이 대부분이다.

미니록 리조트와 라겐 리조트의 차이를 한 마디로 하자면 ‘자연스러움 vs 세련됨’이라 하겠다. 엘니도 일대 섬 중 가장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해 1981년 제일 처음 들어선 리조트가 미니록이다. 높은 석회석 절벽이 아담한 해변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엘니도 일대 명소로 꼽히는 빅라군·스몰라군이 리조트에서 배로 5분 거리다.

1998년 문을 연 라겐 리조트는 현대적 시설을 자랑한다. 예쁜 해변 대신 바닷물을 끌어들인 넓은 수영장이 있다. ‘라겐’은 현지어로 돌로 된 스토브란 뜻으로 이곳은 기암절벽이 많고 숲이 우거져 미니록에 비해 웅장한 느낌이다.

둘 중 어디에 묵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매 리조트인 만큼 원하는 대로 날짜를 쪼개 나눠 묵을 수 있고 양쪽 시설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두 리조트는 배로 20분 거리다.

이왕 리조트를 선택했다면 세상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서비스를 즐겨보길 권한다. 그중 하나가 개인 전용 비치(private beach)다. 커플들이라면 꼭 해봐야 할 프로그램. 시간과 장소만 예약하면 두 사람을 무인도에 떨어뜨려준다.

시간이 되면 리조트 직원들이 등나무로 엮은 예쁜 식탁과 의자, 파라솔을 직접 배에 싣고 와 두 사람만의 식사를 근사하게 차려준다. 엘니도 리조트는 인근 팡갈루시안(Pangalusian) 섬과 엔탈룰라(Entalula) 섬 백사장에 런치 바를 운영하고 있다. 두 섬의 백사장은 밀가루같이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윈드서핑을 즐기다 모래밭 위에 차려진 뷔페에서 느긋한 점심을 먹는다. 비치 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유를 부려본다면 아등바등하던 일상이 모래알처럼 작아보일 것 같다.


한국에는 ‘엘니도=리조트’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스킨 스쿠버나 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를 맘껏 싸게 즐기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은 엘니도 타운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엘니도 타운은 엘니도 리오 공항에서 남서쪽 해변에 위치한 50~60가구 규모의 작은 마을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유럽 배낭여행족들 사이에는 이미 적잖이 입소문이 났다. 엘니도 타운을 찾은 대부분 관광객이 유럽 사람들이다. 타운에 가려면 리오 공항에 대기하는 트라이시클을 이용하면 된다. 요금은 120페소이며 15분 정도 걸린다.

엘니도 리조트가 깔끔한 호텔이라면 엘니도 타운의 숙박시설은 다소 엉성한 민박집이나 모텔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가장 비싼 바닷가 쪽 민박집도 하룻밤에 500페소(약 1만원) 안팎이면 해결된다. 개인방에 공동 욕실·화장실을 쓰는 수준이다. 타운 근처에 5개의 커티지를 갖춘 돌라록 비치 리조트가 있긴 하다. 1인당 하룻밤에 75~100달러 정도로 미니록이나 라겐 리조트에 비해 3분의 1 ~ 4분의 1 정도 저렴하다.

숙박을 정했다면 재빨리 섬 투어를 같이 할 여행친구를 찾는 게 급선무다. 배가 출발하려면 최소 5~6명의 인원이 움직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유럽인이 운영하는 ‘엘니도 부티크 앤 아트카페’는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타운의 명소다.

타운을 베이스캠프로 엘니도 일대 섬을 돌아보는 코스는 3가지 정도. 가격은 하루 한 배당 2500~3500페소(점심 포함) 정도로 1인당 500~600페소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섬을 돌아보는 투어는 리조트에서 마련해주는 것과 타운에서 사람을 모아 가는 것이 코스는 좀 다르지만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투어 중에는 미니록 섬의 스몰라군과 빅라군이 유명하다. 라군은 석회암 절벽으로 둘러싸여 만들어진 호수 같은 공간을 말한다. 절벽 사이를 카약을 타고 누비다 보면 바다가 아닌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신비감이 느껴진다. 마틴록 섬 허리에 위치한 시크릿 비치도 추천 명소다. 절벽 사이에 난 작은 구멍 사이를 헤엄쳐 들어가야 닿을 수 있어 ‘시크릿(secret)’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음날 데리러 올 배를 예약하고 텐트를 미리 준비해가면 야영을 할 수도 있다. 하루 동안 해변을 전세 내는 셈이다.

다이빙 마니아들은 좀 멀리 나가 바쿠잇 군도와 칼라미안 군도 중간의 코론 섬의 난파선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코론 섬 인근에는 1944년 태평양전쟁 당시 미 전투기에 의해 격침된 일본 전함과 상선 10여척이 가라앉아 있다.


엘니도에 가려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엘니도에 들어가는 국내선을 타야 한다. 엘니도와 아만폴로로 가는 전용 비행장인 마닐라 소리아노(Soriano) 공항에서 엘니도 리조트의 자회사인 ITI의 19인승 경비행기를 타거나 마닐라 국내선 공항에서 출발하는 동남아시아 항공(SEAIR)의 경비행기를 타면 된다.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운임은 왕복 25만원 안팎이다. ITI는 매일 오전, 오후 엘니도 직항편을 운행하고 SEAIR는 화, 목, 토요일 부수앙가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띄운다.

엘니도에 들어가려면 예전에는 마닐라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지만 지난달 초 필리핀 항공(02-774-3581)이 인천~마닐라 오전 편을 신설하면서 하루 만에 엘니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환율은 1페소에 20원, 100페소에 2000원 정도.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필리핀관광청 www.wowphilippines.or.kr (02)598-2290

글 : 이인숙기자
출처 : [경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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