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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한장

절벽 위에 홀로 핀 봄 관측소 '우도 등대'

by 누피짱 2008. 4. 24.

소가 누워있는 모습 같다 해서 붙은 이름 우도(牛島). 우도와 성산포 사이의 바다는 거칠지만 물결 위를 스치는 봄바람은 부드럽다. 바람에 실려온 유채꽃 향기가 에메랄드 빛 수면에 보이지 않는 지문을 남긴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들떠있다. 유채꽃 활짝 핀 우도로 봄맞이 나가는 설렘 때문이리라. 섬을 도는 작은 셔틀버스로 등대 아랫녘에 닿는다. 제주 말로 '검멀래'라 부르는 검은 모래 해변이 비단처럼 굽이친다. 이곳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수직 절벽인 해발 132m 높이의 우도봉 꼭대기에 솟은 등대의 등탑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아찔한 곳에 세웠지만 그만큼 천하절경을 굽어보고 있는 셈이다.



우도 등대 아래의 드넓은 풀밭은 바다와 맞닿았다. 이곳에 서면 천진항과 비양도, 그리고 노란 유채밭과 형형색색의 지붕 등 우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둣빛이 돌기 시작하는 풀밭에서 노니는 말과 태어난 땅에 묻힌 섬사람들의 무덤도 듬성듬성 그림처럼 떠있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그리고 2개의 노란 등대가 선명한 성산포항, 왕관 모양의 성산 일출봉, 종달리 해안, 한라산 정상이 이국적인 풍경을 그린다. 동쪽에는 코발트색 망망대해다. 우도8경의 하나인 지두청사(地頭靑莎)다.

전국의 등대를 찾아다닌 지 30년. 수많은 등대 가운데 우도 등대에는 유달리 시심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섬 속의 섬, 우도가 간직한 때묻지 않은 풍경 때문이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공원도 조성됐다. 신화에 등장하는 파로스 등대, 상하이항의 마호타 파고다 등대, 독일의 브레머헤븐 등대,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인 다데이시사키, 우리나라 독도 등대 같은 갖가지 모형이 모여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우도 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 1일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출입문과 창문이 돋보이는 옛 등대는 100년간의 임무를 완수하고 퇴역했다. 그 옆에 손자뻘인 16m 높이의 100주년 기념 등대가 서 있다.



성산 일출봉에서 태어난 태양이 한라산을 넘는다. 기다렸다는 듯 우도 등대가 망망대해를 향해 가느다란 빛 줄기를 쏟아낸다. 하늘의 별들이 내려앉은 듯 우도의 가로등도 하나둘 불을 밝힌다. 화답이라도 하듯 어선 집어등도 검은 바다를 수놓기 시작한다. 봄이라지만 우도 등대의 밤은 여전히 겨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 램지 부인은 등대 빛 줄기가 인정사정 없이 냉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평화 속에, 이 안식 속에, 이 영원성 속에'라고 등대의 편안함과 영원성을 극찬한다. 이 이율배반적인 표현은 등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곶(串) 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떠있는 느낌의 등대는 때로는 폭풍우에 휘둘리기도 하고, 때로는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여름 바다에서 하염없이 졸기도 한다. 등대를 상징하는 낭만과 고독이라는 단어도 이율배반성에서 탄생한 것이리라.

우도 등대 아래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거대한 동굴이 숨어있다. 동안경굴이라는 해식 동굴로 여기서 해마다 동굴음악회가 열린다. 배를 타야 접근할 수 있는 동굴은 수백 명을 수용할 정도로 깊고 넓다. 노래를 부르면 동굴 아가리를 통해 바다로 퍼지고, 파도가 밀려들면 해조음이 동굴을 채운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조용하고 아름답다. 절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에 취하면 복잡한 세상사를 모두 잊고 등대에서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막상 역할이 바뀌어 진짜 등대원이 된다면 어떨까? 과연 주변의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할까?

잠시 보는 풍경과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삶의 풍경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구경꾼에게는 오가는 어선조차 마음의 풍경으로 들어오지만 등대지기에겐 무미건조한 일상 그 자체일 뿐이다. 아무래도 좋다. 제주도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우도 등대는 그런 곳이다.

■ 제주 성산포항에서 우도 천진항까지 배로 15분.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요금은 우도해양도립공원 입장료와 항만 이용료를 포함해 왕복 5500원(어른 기준). 중소형 승용차 도선료는 왕복 2만3000원(064-782-5671)이다. 종달리항과 우도 하우목동항 사이는 배로 20분 걸린다. 064-782-7719.

■ 우도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오후에 들어가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오전에 나오도록 스케줄을 짜는 편이 좋다. 섬 일주 순환버스가 있긴 하지만 스쿠터나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것이 더 편하다. 길이 평탄한 데다 거미줄처럼 뻗어있어 3∼4시간이면 섬 곳곳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진항에 대여 업체가 있다. 우도봉 수직절벽 아래를 둘러보려면 검멀래 해변에서 고무보트나 스피드보트를 타면 된다. 010-9898-3668.

■ 숙소는 천진항과 검멀래 해변, 하고수동 해수욕장, 산호사 해변의 펜션이나 민박집을 이용하자. 바닷가에 자리 잡아 해돋이와 해넘이의 장관을 볼 수 있다.

■ 비양동 마을의 해안도로에 위치한 '해와 달, 그리고 섬'은 자연산 생선회와 우럭조림이 맛있는 음식점(064-784-0941). 속껍질째 먹는 우도 땅콩과 자연산 미역, 그리고 우뭇가사리는 우도 특산물이다. 천진항 우도농협 하나로마트와 우도토산품직매장, 검멀래 해변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우도면사무소(064-728-4352).

글 : 주강현

출처 : [마이프라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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