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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iz전략마케팅

저가정책의 전략적 의미

by 누피짱 2008. 4. 23.
 

저가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박리다매’ 이상의 부가가치를 노리는 기업들이 있다. 저가 정책에 숨어있는 전략적 의미를 통해 이 시장의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본다.
 
언젠가부터 ‘프리미엄 제품’, ‘하이 엔드(high-end) 시장’으로의 진출이 국내외 선두 기업의 최대 목표가 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제품으로는 풍족한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가 시장은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낮고 프리미엄급 시장에 비해 수요 변화도 크다.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급 시장으로의 진입은 기업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초부터 소수의 귀족 소비자들만을 타깃으로 했던 명품 브랜드들에게는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이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대중적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소비 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던 매스티지는, 고급품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일반적 제품의 수준을 끌어올린 트레이딩 업(Trading Up)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업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해보자.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대중들을 위해 기존의 초고가 브랜드를 매스티지 브랜드로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시킨 셈이다. 브랜드의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세일도 하지 않고 제한된 수량만을 판매한다는 명품 브랜드들로서는 놀라운 변신이다. 분명 한 단계 아래에서 제법 매력적인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초저가’ 제품의 인기가 높았다. 특히 대표적인 사치품인 화장품 시장에서 파격적인 저가로 돌풍을 일으킨 미샤는 주목할만한 성공 사례다. 이 업체는 작년 한 해 동안에만 기존 매출액의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루며 한불, 한국 화장품과 같은 중견 기업들을 제치고 업계 4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전혀 다른 것 같은 이 두 소비 트렌드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 한 단계 아래의 목표 시장에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저가 전략은 이윤보다는 점유율에서 기회를 찾고자 할 때 사용된다. 규모의 이점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시장이 크거나 낮은 판가를 극복할만한 생산효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낮은 이윤으로라도 많이 팔아 합을 늘리는 것이 저가 시장이 갖는 가치의 전부일까? 
 
저 마진, 브랜드 이미지의 저하, 소모적인 가격 경쟁이라는 저가 시장의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저가 시장에서 아예 등을 돌릴 수 없는 전략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래의 알짜 고객과 관계를 시작한다 
 
고객의 평생 구매기간 동안 기대되는 미래 수익 흐름의 현재가치를 고객 평생가치(customer lifetime value, CLV)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객의 가치는, 한 번의 구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고객이 평생 동안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의 현재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지금은 비록 경차를 구입하는 고객이지만 그 고객이 장래에 우리 회사의 중, 대형 승용차를 구입할 것이라면, 해당 고객의 가치는 경차로 얻는 마진보다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익이 높지 않은 저가 제품이라 해도 해당 제품 구매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시발점으로서 이 시장이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나 가전과 같은 내구재의 경우는 소비자가 제품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고가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제품 전환에 따른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소비자는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고 브랜드를 바꿀 가능성이 작다. J.D. Power의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의 경우 동일 회사 제품의 재구매율은 평균 48.4%다. 2004년 조사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도요타의 재구매율은 60.6%에 이른다. 스타일링, 내부구조, A/S 센터, 영업사원 등 자신이 익숙한 것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해당 자동차에 큰 문제가 없을 경우 사람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제조사의 차량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수익성 분석에서 도저히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도 경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었다. 최근 시리즈1을 출시한 BMW는 이 제품이 이전의 BMW 시리즈에 비해 수익성이 낮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초기 고객인 젊은 구매자들이 시리즈1을 통해 BMW 사용 경험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이 장래 수익성이 높은 5시리즈 및 7시리즈의 고객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재구매의 기회는 동종 제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인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iPOD)의 성공은 애플(Apple)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시켜 Mac PC의 매출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 PC 구입의 경험이 없는 신규 고객들에게는 아이포드 효과가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예로 프라다는 미우미우로, 돌체 앤 가바나는 D&G로, 알마니는 알마니 익스체인지로 명품 이미지를 가볍게 하면서 기존 고객들보다 젊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했다. 매스티지 브랜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구매력이 커지면 비슷한 스타일의 명품 브랜드로 옮겨 갈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게 저가 제품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낯설어 하는 고객에게 다가서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제품은 일단 고객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에 기업들은 제공하는 가치에 못 미치더라도 고객의 사용 경험을 높이기 위해 종종 저가 전략을 사용한다. 향후 제품의 경쟁력이 시장에 충분히 인지된 후에 가치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고의 재구매율을 보이는 도요타도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이익을 보지 못할 정도의 저가에 렉서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고급차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고 점차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그림> 참조).
 
해당 제품의 가격을 직접 올리지는 않더라도 일단 제품의 가치에 대해 고객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보다 발전된 형태의 제품으로 본격적인 게임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회사 인튜이트(Intuit)는 개인용 재무관리 소프트웨어인 퀵큰(Quicken)을 35~45 달러 수준의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제품을 사용하는 초기 고객들의 범위를 넓히고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고객 기반을 더욱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앞으로 상위 버전의 구입과, 퀵큰과 보완관계에 있는 기타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노린 전략이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애플의 저가형 MP3 플레이어 출시도 같은 맥락이다. 하드 디스크형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이 파격적인 가격에 플래시형 MP3 플레이어인 아이포드 셔플(iPOD shuffle)을 출시하였다. 특히 플래시형 제품이 주를 이루는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데에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왜 하필 액정 화면도 없는 단순한 제품으로 플래시 제품의 강자인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을까? 아이포드 셔플은 지극히 단순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하드형 제품의 감각적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했고 아이포드 전용의 뮤직 서비스인 iTUNE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격인하의 배경에 대해 애플의 한 관계자는 “아이포드 하드디스크 타입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던 상황에서 대중 친화적 모델인 셔플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iPOD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애플이 노렸던 것은 플래시 시장에의 진출 그 자체보다는 셔플로 아이포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인지도가 높아진 뒤에는 경쟁력이 강한 하드형 MP3 플레이어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저가만으로 인지도는 높일 수 있을지언정 구매가 늘어나는 것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이 제품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해 주는 가치가 없다면, 그 제품은 더 큰 시장으로 발전할 기회도 없이 싸구려 제품으로만 남을 뿐이다.
 
 
저가 제품을 미끼로 진짜 돈이 되는 사업을 키운다
 
때로는 저가에 판매되는 제품 그 자체보다는, 해당 제품과 보완적 관계에 있는 제품의 저변 확대용으로 저가 전략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종전의 똑바른 날을 버리고 빨리 새로운 방식의 면도기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질레트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저가에 면도기를 판매했다. 별것 아닌 기술로 저가에 대량 생산되는 질레트의 안전 면도기는 계속해서 닳는 면도날에서 이윤을 본다. 복사기는 복사기 판매보다 소모품 매출에서 더 큰 수익을 얻고 있다. 게임기는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추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아이포드 뮤직 플레이어의 대성공 뒤에도 온라인 음악 콘텐츠와의 보완관계를 활용한 애플의 전략이 엿보인다. iTUNE은 수익성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던 온라인 음악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플이 손해를 무릅쓰고 시장을 형성해 놓은 사업이다. 현재 iTUNE Music Store는 전 세계 유료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포드의 인터페이스는 iTUNE의 사용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많은 아이포드 사용자들이 iTUNE의 이용 편리성을 아이포드의 강점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iTUNE 서비스는 사업 자체로는 수익을 내지 못하였지만 아이포드의 매출에는 톡톡히 기여했다. 현재까지의 수익성만 놓고 본다면 iTUNE이 아이포드를 키우기 위한 로스 리더(Loss Leader)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로스 리더 역할을 뒤집어 볼 생각인 모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 자신이 밝혔듯이, 소비자들이 장래 언제까지나 MP3 플레이어에 지금과 같은 고가를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미끼 상품에 불과한 소프트웨어 사업이 더 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저가형 플래시 MP3 아이포드 셔플의 출시는 이미 두 보완재 사이의 관계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와 이동전화 서비스의 관계처럼 MP3 플레이어 시장의 확대로 콘텐츠 판매가 지속적인 수익원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익성이 높은 보완재가 있고 보완재와의 보완 관계가 강할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단, 그 보완관계라는 것은 아이포드와 iTUNE의 관계처럼 변해갈 수 있는 것이므로 시장의 기회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군소 경쟁자를 평정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경쟁사를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제품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언제나 후발 기업에 비해 한발 앞서 제품을 출시하고 고가 정책으로 높은 수익을 실현한다. 이후 후발 기업이 추격해오면 제품의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새로운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Skimming 전략이라고 하는데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휴대폰과 같은 경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 다른 경우로 재무적으로 견실한 기업이 의도적으로 가격 경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가격할인으로 자사가 입는 손실보다 경쟁사에 입힐 타격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면 대형 의류 브랜드 갭(Gap)이나 노드스트롬(Nordstrom)과 같은 유통체인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에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가격 할인을 써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국의 많은 로컬 기업들이 지금은 위협적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급성장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들의 초기 전략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 시장 진출 초기에 다국적 기업이 판매한 전자레인지 한 대 가격은 중국인 연평균 소득의 83%에 해당하는 초고가였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이 고가 시장에 집착해 있는 동안 로컬 기업들은 더 큰 수요가 있었던 저가 시장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중국의 프리미엄 시장도 성장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 시장에서 로컬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기술의 격차가 점점 작아지는 추세에서 전략적 실패로 불필요하게 호랑이 새끼를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시장 강자의 의도적인 경쟁사 죽이기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지나친 가격 압박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다른 경쟁 우위가 있을 때 가격 경쟁 또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저가 정책
 
지금까지 저가 정책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덧붙여 성공적으로 저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닌 ‘혁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저가 전략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만한 사업 모델이나 기술의 변화가 저가 전략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다른 전략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모방하기 쉽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제품의 기능적 우수성, 경쟁 제품에 비해 저렴한 경제성, 그리고 심리적 만족감 등이 다양하게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비슷한 기능적,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력과 마찬가지로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차별화 요소다.
 
대부분의 전문점 유통 제품보다 싼값에 판매되는 초저가 브랜드 미샤의 화장품은 저가 화장품이 놓치기 쉬운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부분을 잘 다듬어진 감성 마케팅으로 보완하였다. 거기에 품질 기반(Quality Base)을 강조하며 제품의 기능성을 확보하고, 경쟁 제품에 비해 경제성까지 부여했다. 썩 괜찮은 제품과 감성에 더해진 파격적인 가격은 이미 가격 전략을 넘어선 차별화 전략이다. 물론 지금의 가격 대비 가치의 우월성이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쟁사 역시 제품력과 마케팅을 더욱 강화하면서 다른 부분에서 가격에서의 차이를 메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이러한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능이나 심리적 만족 측면을 계속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다. -끝-
저가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박리다매’ 이상의 부가가치를 노리는 기업들이 있다. 저가 정책에 숨어있는 전략적 의미를 통해 이 시장의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본다.
 
언젠가부터 ‘프리미엄 제품’, ‘하이 엔드(high-end) 시장’으로의 진출이 국내외 선두 기업의 최대 목표가 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제품으로는 풍족한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가 시장은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낮고 프리미엄급 시장에 비해 수요 변화도 크다.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급 시장으로의 진입은 기업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초부터 소수의 귀족 소비자들만을 타깃으로 했던 명품 브랜드들에게는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이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대중적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소비 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던 매스티지는, 고급품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일반적 제품의 수준을 끌어올린 트레이딩 업(Trading Up)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업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해보자.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대중들을 위해 기존의 초고가 브랜드를 매스티지 브랜드로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시킨 셈이다. 브랜드의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세일도 하지 않고 제한된 수량만을 판매한다는 명품 브랜드들로서는 놀라운 변신이다. 분명 한 단계 아래에서 제법 매력적인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초저가’ 제품의 인기가 높았다. 특히 대표적인 사치품인 화장품 시장에서 파격적인 저가로 돌풍을 일으킨 미샤는 주목할만한 성공 사례다. 이 업체는 작년 한 해 동안에만 기존 매출액의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루며 한불, 한국 화장품과 같은 중견 기업들을 제치고 업계 4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전혀 다른 것 같은 이 두 소비 트렌드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 한 단계 아래의 목표 시장에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저가 전략은 이윤보다는 점유율에서 기회를 찾고자 할 때 사용된다. 규모의 이점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시장이 크거나 낮은 판가를 극복할만한 생산효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낮은 이윤으로라도 많이 팔아 합을 늘리는 것이 저가 시장이 갖는 가치의 전부일까? 
 
저 마진, 브랜드 이미지의 저하, 소모적인 가격 경쟁이라는 저가 시장의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저가 시장에서 아예 등을 돌릴 수 없는 전략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래의 알짜 고객과 관계를 시작한다 
 
고객의 평생 구매기간 동안 기대되는 미래 수익 흐름의 현재가치를 고객 평생가치(customer lifetime value, CLV)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객의 가치는, 한 번의 구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고객이 평생 동안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의 현재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지금은 비록 경차를 구입하는 고객이지만 그 고객이 장래에 우리 회사의 중, 대형 승용차를 구입할 것이라면, 해당 고객의 가치는 경차로 얻는 마진보다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익이 높지 않은 저가 제품이라 해도 해당 제품 구매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시발점으로서 이 시장이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나 가전과 같은 내구재의 경우는 소비자가 제품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고가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제품 전환에 따른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소비자는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고 브랜드를 바꿀 가능성이 작다. J.D. Power의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의 경우 동일 회사 제품의 재구매율은 평균 48.4%다. 2004년 조사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도요타의 재구매율은 60.6%에 이른다. 스타일링, 내부구조, A/S 센터, 영업사원 등 자신이 익숙한 것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해당 자동차에 큰 문제가 없을 경우 사람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제조사의 차량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수익성 분석에서 도저히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도 경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었다. 최근 시리즈1을 출시한 BMW는 이 제품이 이전의 BMW 시리즈에 비해 수익성이 낮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초기 고객인 젊은 구매자들이 시리즈1을 통해 BMW 사용 경험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이 장래 수익성이 높은 5시리즈 및 7시리즈의 고객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재구매의 기회는 동종 제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인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iPOD)의 성공은 애플(Apple)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시켜 Mac PC의 매출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 PC 구입의 경험이 없는 신규 고객들에게는 아이포드 효과가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예로 프라다는 미우미우로, 돌체 앤 가바나는 D&G로, 알마니는 알마니 익스체인지로 명품 이미지를 가볍게 하면서 기존 고객들보다 젊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했다. 매스티지 브랜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구매력이 커지면 비슷한 스타일의 명품 브랜드로 옮겨 갈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게 저가 제품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낯설어 하는 고객에게 다가서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제품은 일단 고객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에 기업들은 제공하는 가치에 못 미치더라도 고객의 사용 경험을 높이기 위해 종종 저가 전략을 사용한다. 향후 제품의 경쟁력이 시장에 충분히 인지된 후에 가치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고의 재구매율을 보이는 도요타도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이익을 보지 못할 정도의 저가에 렉서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고급차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고 점차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그림> 참조).
 
해당 제품의 가격을 직접 올리지는 않더라도 일단 제품의 가치에 대해 고객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보다 발전된 형태의 제품으로 본격적인 게임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회사 인튜이트(Intuit)는 개인용 재무관리 소프트웨어인 퀵큰(Quicken)을 35~45 달러 수준의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제품을 사용하는 초기 고객들의 범위를 넓히고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고객 기반을 더욱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앞으로 상위 버전의 구입과, 퀵큰과 보완관계에 있는 기타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노린 전략이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애플의 저가형 MP3 플레이어 출시도 같은 맥락이다. 하드 디스크형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이 파격적인 가격에 플래시형 MP3 플레이어인 아이포드 셔플(iPOD shuffle)을 출시하였다. 특히 플래시형 제품이 주를 이루는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데에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왜 하필 액정 화면도 없는 단순한 제품으로 플래시 제품의 강자인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을까? 아이포드 셔플은 지극히 단순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하드형 제품의 감각적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했고 아이포드 전용의 뮤직 서비스인 iTUNE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격인하의 배경에 대해 애플의 한 관계자는 “아이포드 하드디스크 타입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던 상황에서 대중 친화적 모델인 셔플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iPOD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애플이 노렸던 것은 플래시 시장에의 진출 그 자체보다는 셔플로 아이포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인지도가 높아진 뒤에는 경쟁력이 강한 하드형 MP3 플레이어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저가만으로 인지도는 높일 수 있을지언정 구매가 늘어나는 것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이 제품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해 주는 가치가 없다면, 그 제품은 더 큰 시장으로 발전할 기회도 없이 싸구려 제품으로만 남을 뿐이다.
 
 
저가 제품을 미끼로 진짜 돈이 되는 사업을 키운다
 
때로는 저가에 판매되는 제품 그 자체보다는, 해당 제품과 보완적 관계에 있는 제품의 저변 확대용으로 저가 전략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종전의 똑바른 날을 버리고 빨리 새로운 방식의 면도기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질레트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저가에 면도기를 판매했다. 별것 아닌 기술로 저가에 대량 생산되는 질레트의 안전 면도기는 계속해서 닳는 면도날에서 이윤을 본다. 복사기는 복사기 판매보다 소모품 매출에서 더 큰 수익을 얻고 있다. 게임기는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추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아이포드 뮤직 플레이어의 대성공 뒤에도 온라인 음악 콘텐츠와의 보완관계를 활용한 애플의 전략이 엿보인다. iTUNE은 수익성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던 온라인 음악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플이 손해를 무릅쓰고 시장을 형성해 놓은 사업이다. 현재 iTUNE Music Store는 전 세계 유료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포드의 인터페이스는 iTUNE의 사용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많은 아이포드 사용자들이 iTUNE의 이용 편리성을 아이포드의 강점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iTUNE 서비스는 사업 자체로는 수익을 내지 못하였지만 아이포드의 매출에는 톡톡히 기여했다. 현재까지의 수익성만 놓고 본다면 iTUNE이 아이포드를 키우기 위한 로스 리더(Loss Leader)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로스 리더 역할을 뒤집어 볼 생각인 모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 자신이 밝혔듯이, 소비자들이 장래 언제까지나 MP3 플레이어에 지금과 같은 고가를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미끼 상품에 불과한 소프트웨어 사업이 더 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저가형 플래시 MP3 아이포드 셔플의 출시는 이미 두 보완재 사이의 관계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와 이동전화 서비스의 관계처럼 MP3 플레이어 시장의 확대로 콘텐츠 판매가 지속적인 수익원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익성이 높은 보완재가 있고 보완재와의 보완 관계가 강할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단, 그 보완관계라는 것은 아이포드와 iTUNE의 관계처럼 변해갈 수 있는 것이므로 시장의 기회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군소 경쟁자를 평정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경쟁사를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제품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언제나 후발 기업에 비해 한발 앞서 제품을 출시하고 고가 정책으로 높은 수익을 실현한다. 이후 후발 기업이 추격해오면 제품의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새로운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Skimming 전략이라고 하는데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휴대폰과 같은 경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 다른 경우로 재무적으로 견실한 기업이 의도적으로 가격 경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가격할인으로 자사가 입는 손실보다 경쟁사에 입힐 타격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면 대형 의류 브랜드 갭(Gap)이나 노드스트롬(Nordstrom)과 같은 유통체인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에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가격 할인을 써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국의 많은 로컬 기업들이 지금은 위협적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급성장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들의 초기 전략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 시장 진출 초기에 다국적 기업이 판매한 전자레인지 한 대 가격은 중국인 연평균 소득의 83%에 해당하는 초고가였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이 고가 시장에 집착해 있는 동안 로컬 기업들은 더 큰 수요가 있었던 저가 시장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중국의 프리미엄 시장도 성장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 시장에서 로컬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기술의 격차가 점점 작아지는 추세에서 전략적 실패로 불필요하게 호랑이 새끼를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시장 강자의 의도적인 경쟁사 죽이기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지나친 가격 압박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다른 경쟁 우위가 있을 때 가격 경쟁 또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저가 정책
 
지금까지 저가 정책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덧붙여 성공적으로 저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닌 ‘혁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저가 전략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만한 사업 모델이나 기술의 변화가 저가 전략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다른 전략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모방하기 쉽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제품의 기능적 우수성, 경쟁 제품에 비해 저렴한 경제성, 그리고 심리적 만족감 등이 다양하게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비슷한 기능적,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력과 마찬가지로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차별화 요소다.
 
대부분의 전문점 유통 제품보다 싼값에 판매되는 초저가 브랜드 미샤의 화장품은 저가 화장품이 놓치기 쉬운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부분을 잘 다듬어진 감성 마케팅으로 보완하였다. 거기에 품질 기반(Quality Base)을 강조하며 제품의 기능성을 확보하고, 경쟁 제품에 비해 경제성까지 부여했다. 썩 괜찮은 제품과 감성에 더해진 파격적인 가격은 이미 가격 전략을 넘어선 차별화 전략이다. 물론 지금의 가격 대비 가치의 우월성이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쟁사 역시 제품력과 마케팅을 더욱 강화하면서 다른 부분에서 가격에서의 차이를 메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이러한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능이나 심리적 만족 측면을 계속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다. -끝-
저가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박리다매’ 이상의 부가가치를 노리는 기업들이 있다. 저가 정책에 숨어있는 전략적 의미를 통해 이 시장의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본다.
 
언젠가부터 ‘프리미엄 제품’, ‘하이 엔드(high-end) 시장’으로의 진출이 국내외 선두 기업의 최대 목표가 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제품으로는 풍족한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가 시장은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낮고 프리미엄급 시장에 비해 수요 변화도 크다.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급 시장으로의 진입은 기업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초부터 소수의 귀족 소비자들만을 타깃으로 했던 명품 브랜드들에게는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이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대중적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소비 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던 매스티지는, 고급품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일반적 제품의 수준을 끌어올린 트레이딩 업(Trading Up)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업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해보자.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대중들을 위해 기존의 초고가 브랜드를 매스티지 브랜드로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시킨 셈이다. 브랜드의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세일도 하지 않고 제한된 수량만을 판매한다는 명품 브랜드들로서는 놀라운 변신이다. 분명 한 단계 아래에서 제법 매력적인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초저가’ 제품의 인기가 높았다. 특히 대표적인 사치품인 화장품 시장에서 파격적인 저가로 돌풍을 일으킨 미샤는 주목할만한 성공 사례다. 이 업체는 작년 한 해 동안에만 기존 매출액의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루며 한불, 한국 화장품과 같은 중견 기업들을 제치고 업계 4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전혀 다른 것 같은 이 두 소비 트렌드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 한 단계 아래의 목표 시장에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저가 전략은 이윤보다는 점유율에서 기회를 찾고자 할 때 사용된다. 규모의 이점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시장이 크거나 낮은 판가를 극복할만한 생산효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낮은 이윤으로라도 많이 팔아 합을 늘리는 것이 저가 시장이 갖는 가치의 전부일까? 
 
저 마진, 브랜드 이미지의 저하, 소모적인 가격 경쟁이라는 저가 시장의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저가 시장에서 아예 등을 돌릴 수 없는 전략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래의 알짜 고객과 관계를 시작한다 
 
고객의 평생 구매기간 동안 기대되는 미래 수익 흐름의 현재가치를 고객 평생가치(customer lifetime value, CLV)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객의 가치는, 한 번의 구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고객이 평생 동안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의 현재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지금은 비록 경차를 구입하는 고객이지만 그 고객이 장래에 우리 회사의 중, 대형 승용차를 구입할 것이라면, 해당 고객의 가치는 경차로 얻는 마진보다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익이 높지 않은 저가 제품이라 해도 해당 제품 구매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시발점으로서 이 시장이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나 가전과 같은 내구재의 경우는 소비자가 제품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고가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제품 전환에 따른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소비자는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고 브랜드를 바꿀 가능성이 작다. J.D. Power의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의 경우 동일 회사 제품의 재구매율은 평균 48.4%다. 2004년 조사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도요타의 재구매율은 60.6%에 이른다. 스타일링, 내부구조, A/S 센터, 영업사원 등 자신이 익숙한 것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해당 자동차에 큰 문제가 없을 경우 사람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제조사의 차량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수익성 분석에서 도저히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도 경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었다. 최근 시리즈1을 출시한 BMW는 이 제품이 이전의 BMW 시리즈에 비해 수익성이 낮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초기 고객인 젊은 구매자들이 시리즈1을 통해 BMW 사용 경험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이 장래 수익성이 높은 5시리즈 및 7시리즈의 고객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재구매의 기회는 동종 제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인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iPOD)의 성공은 애플(Apple)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시켜 Mac PC의 매출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 PC 구입의 경험이 없는 신규 고객들에게는 아이포드 효과가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예로 프라다는 미우미우로, 돌체 앤 가바나는 D&G로, 알마니는 알마니 익스체인지로 명품 이미지를 가볍게 하면서 기존 고객들보다 젊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했다. 매스티지 브랜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구매력이 커지면 비슷한 스타일의 명품 브랜드로 옮겨 갈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게 저가 제품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낯설어 하는 고객에게 다가서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제품은 일단 고객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에 기업들은 제공하는 가치에 못 미치더라도 고객의 사용 경험을 높이기 위해 종종 저가 전략을 사용한다. 향후 제품의 경쟁력이 시장에 충분히 인지된 후에 가치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고의 재구매율을 보이는 도요타도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이익을 보지 못할 정도의 저가에 렉서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고급차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고 점차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그림> 참조).
 
해당 제품의 가격을 직접 올리지는 않더라도 일단 제품의 가치에 대해 고객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보다 발전된 형태의 제품으로 본격적인 게임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회사 인튜이트(Intuit)는 개인용 재무관리 소프트웨어인 퀵큰(Quicken)을 35~45 달러 수준의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제품을 사용하는 초기 고객들의 범위를 넓히고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고객 기반을 더욱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앞으로 상위 버전의 구입과, 퀵큰과 보완관계에 있는 기타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노린 전략이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애플의 저가형 MP3 플레이어 출시도 같은 맥락이다. 하드 디스크형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이 파격적인 가격에 플래시형 MP3 플레이어인 아이포드 셔플(iPOD shuffle)을 출시하였다. 특히 플래시형 제품이 주를 이루는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데에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왜 하필 액정 화면도 없는 단순한 제품으로 플래시 제품의 강자인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을까? 아이포드 셔플은 지극히 단순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하드형 제품의 감각적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했고 아이포드 전용의 뮤직 서비스인 iTUNE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격인하의 배경에 대해 애플의 한 관계자는 “아이포드 하드디스크 타입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던 상황에서 대중 친화적 모델인 셔플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iPOD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애플이 노렸던 것은 플래시 시장에의 진출 그 자체보다는 셔플로 아이포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인지도가 높아진 뒤에는 경쟁력이 강한 하드형 MP3 플레이어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저가만으로 인지도는 높일 수 있을지언정 구매가 늘어나는 것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이 제품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해 주는 가치가 없다면, 그 제품은 더 큰 시장으로 발전할 기회도 없이 싸구려 제품으로만 남을 뿐이다.
 
 
저가 제품을 미끼로 진짜 돈이 되는 사업을 키운다
 
때로는 저가에 판매되는 제품 그 자체보다는, 해당 제품과 보완적 관계에 있는 제품의 저변 확대용으로 저가 전략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종전의 똑바른 날을 버리고 빨리 새로운 방식의 면도기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질레트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저가에 면도기를 판매했다. 별것 아닌 기술로 저가에 대량 생산되는 질레트의 안전 면도기는 계속해서 닳는 면도날에서 이윤을 본다. 복사기는 복사기 판매보다 소모품 매출에서 더 큰 수익을 얻고 있다. 게임기는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추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아이포드 뮤직 플레이어의 대성공 뒤에도 온라인 음악 콘텐츠와의 보완관계를 활용한 애플의 전략이 엿보인다. iTUNE은 수익성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던 온라인 음악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플이 손해를 무릅쓰고 시장을 형성해 놓은 사업이다. 현재 iTUNE Music Store는 전 세계 유료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포드의 인터페이스는 iTUNE의 사용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많은 아이포드 사용자들이 iTUNE의 이용 편리성을 아이포드의 강점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iTUNE 서비스는 사업 자체로는 수익을 내지 못하였지만 아이포드의 매출에는 톡톡히 기여했다. 현재까지의 수익성만 놓고 본다면 iTUNE이 아이포드를 키우기 위한 로스 리더(Loss Leader)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로스 리더 역할을 뒤집어 볼 생각인 모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 자신이 밝혔듯이, 소비자들이 장래 언제까지나 MP3 플레이어에 지금과 같은 고가를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미끼 상품에 불과한 소프트웨어 사업이 더 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저가형 플래시 MP3 아이포드 셔플의 출시는 이미 두 보완재 사이의 관계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와 이동전화 서비스의 관계처럼 MP3 플레이어 시장의 확대로 콘텐츠 판매가 지속적인 수익원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익성이 높은 보완재가 있고 보완재와의 보완 관계가 강할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단, 그 보완관계라는 것은 아이포드와 iTUNE의 관계처럼 변해갈 수 있는 것이므로 시장의 기회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군소 경쟁자를 평정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경쟁사를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제품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언제나 후발 기업에 비해 한발 앞서 제품을 출시하고 고가 정책으로 높은 수익을 실현한다. 이후 후발 기업이 추격해오면 제품의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새로운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Skimming 전략이라고 하는데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휴대폰과 같은 경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 다른 경우로 재무적으로 견실한 기업이 의도적으로 가격 경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가격할인으로 자사가 입는 손실보다 경쟁사에 입힐 타격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면 대형 의류 브랜드 갭(Gap)이나 노드스트롬(Nordstrom)과 같은 유통체인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에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가격 할인을 써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국의 많은 로컬 기업들이 지금은 위협적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급성장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들의 초기 전략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 시장 진출 초기에 다국적 기업이 판매한 전자레인지 한 대 가격은 중국인 연평균 소득의 83%에 해당하는 초고가였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이 고가 시장에 집착해 있는 동안 로컬 기업들은 더 큰 수요가 있었던 저가 시장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중국의 프리미엄 시장도 성장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 시장에서 로컬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기술의 격차가 점점 작아지는 추세에서 전략적 실패로 불필요하게 호랑이 새끼를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시장 강자의 의도적인 경쟁사 죽이기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지나친 가격 압박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다른 경쟁 우위가 있을 때 가격 경쟁 또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저가 정책
 
지금까지 저가 정책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덧붙여 성공적으로 저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닌 ‘혁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저가 전략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만한 사업 모델이나 기술의 변화가 저가 전략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다른 전략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모방하기 쉽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제품의 기능적 우수성, 경쟁 제품에 비해 저렴한 경제성, 그리고 심리적 만족감 등이 다양하게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비슷한 기능적,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은 브랜드나 제품력과 마찬가지로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차별화 요소다.
 
대부분의 전문점 유통 제품보다 싼값에 판매되는 초저가 브랜드 미샤의 화장품은 저가 화장품이 놓치기 쉬운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부분을 잘 다듬어진 감성 마케팅으로 보완하였다. 거기에 품질 기반(Quality Base)을 강조하며 제품의 기능성을 확보하고, 경쟁 제품에 비해 경제성까지 부여했다. 썩 괜찮은 제품과 감성에 더해진 파격적인 가격은 이미 가격 전략을 넘어선 차별화 전략이다. 물론 지금의 가격 대비 가치의 우월성이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쟁사 역시 제품력과 마케팅을 더욱 강화하면서 다른 부분에서 가격에서의 차이를 메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이러한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능이나 심리적 만족 측면을 계속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다. -끝-

정지혜 | 2005.02.25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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