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유행처럼 번지던 고객관계관리(CRM)는 인터넷 거품 붕괴와 경기침체로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업 가치 창출의 원천인 고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면할 수 없다. 기업들이 성공적인 CRM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용하기 위한 원칙을 살펴보도록 한다.
2001년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은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크게 증폭시켰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중대한 요인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업무 효율화를 위해 도입하였던 IT 분야에 대한 투자가 첫번째 보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신규투자뿐만 아니라 기존의 IT 인프라에 대한 유지 및 보수와 관련된 투자마저 보류 대상이 되었다. 이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 고객관계관리) 시스템 부문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1990년대부터 빠른 성장을 지속해왔던 CRM 시장은 인터넷 거품 붕괴와 더불어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미국의 경기지표가 호전되면서, 기업들의 IT 분야에 대한 투자도 다시 서서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Merrill Lynch가 최근 상위 50개 IT기업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 정도의 기업이 IT 예산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응답했고, AMR Research는 경기가 회복된 올해 기업들이 CRM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지난해 보다 10억 달러 늘려 약 108억 달러에 이르는 CRM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왜 고객관계관리인가
세계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산재한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고객 관리를 위한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 말에 부풀어 올랐던 IT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기업, 특히 인터넷에 기반한 기업들이 상당수 사라졌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은 IT 거품 붕괴와는 상관 없이 혹독한 시절을 뚫고 나와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터넷 기업으로 우뚝 섰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아마존닷컴과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졌으나 IT 거품과 함께 사라졌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마존닷컴이 거품경제에서도 내실을 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존닷컴에겐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뒷받침 되어 있었다. 즉, 아마존닷컴이 단순히 고객에게 싼 값에 제품을 제공한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아마존닷컴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는 다양한 제품을 저가로 추천함으로써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결과를 수치로 보게 되면 더욱 명확하다. 일반적인 인터넷 상점의 고객 재방문율이 평균 3~5%에 그칠 때, 아마존닷컴의 재방문율은 무려 15~25%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방문율의 달성은 아마존닷컴이 고객의 니즈를 잘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아마존닷컴의 사례는 기술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결정하는 주요인은 고객과의 관계 구축이며, 기술은 그 수단 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CRM은 불가능한가?
이러한 고객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들이 흔히 취하는 방법은 CRM을 위한 IT 시스템의 도입이다. 그러나 Gartner Group과 Meta Group의 보고서는 2006년까지 기업에 도입된 CRM 시스템의 반 수 이상이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작으로 분류될 수 밖에 없고 모든 CRM 프로젝트의 55~75% 가량이 해당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런 비관적인 수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CRM 프로젝트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Polaroid사는 첨단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CRM 시스템을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CRM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전조사 결과, Polaroid사는 50달러에서 150달러 사이의 디지털 제품을 판매하면서 제품당 5달러에 달하는 고객지원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크게는 판매가의 10%에 달하는 고객지원비용이 지출되고 있던 것이다. 이에 Polaroid사는 모든 부분의 CRM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지 않고, 우선 고객지식 기반의 질의응답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이후 2백만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이나 문의사항 같은 고객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무려 18개월 동안 취합하였다. 이렇게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모든 정보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고객이 이메일로 문의하는 질문의 98%에 대해 자동응답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3년 동안 연간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화 문의자들이 이메일을 통해 문의를 하게 되면서, 고객지원비용은 제품 당 1.6달러로 떨어지게 되었다. Polaroid사는 고객 응대를 위한 시스템을 짧은 시간에 구축하기는 했지만, 18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정보를 취합하여 DB로 구축함으로써 이메일만으로도 고객이 스스로 문제해결이 가능하도록 효율적인 CRM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만일 단순히 질의응답 시스템만을 구축하고 18개월이란 긴 시간을 들여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보 DB를 구축하지 않았다면, Polaroid사의 CRM 시스템 구축은 실패작이 되었을 것이다. Polaroid사는 시스템 구축 이전부터 첨단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행태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하였고, Polaroid사가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잘 파악하였다. Polaroid사는 질의응답 시스템 구축으로 고객들의 제품 정보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고객들의 새로운 정보도 취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CRM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Polaroid사와 같은 성공적인 사례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고객에게 전해줄 가치를 설정하라
2003년 미국에서 실시된 CRMGuru의 설문에 의하면 36%의 응답자가 CRM은 고객을 기업의 중심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고, 23%의 응답자가 고객과의 윈-윈 관계 설정이라 답하였다. 이에 반해 CRM을 고객 관련 프로세스의 자동화라 응답한 비율은 9%에 그쳤다. 또 Morgan Stanley에 따르면, 기업들은 한 번의 거래를 위해서 고객과 15~20회 정도의 교류를 발생시킨다. 기업은 단기적이거나 일회적인 관계가 아닌 장기적이고 상호교환적인 관계형성을 CRM의 목표로 잡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Michigan National 은행의 Doug Andrews 이사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고객의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실패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CRM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들을 관리하게 됨으로써 고객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이익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고객 가치를 위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기업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가 기업의 중심에 있도록 하고 고객과의 상호교류를 지속시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자신의 고객은 누구이며, 자신에게 고객이 어떤 가치를 원하고 있고, 자신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 우선 순위를 정하라
이미 다양한 종류의 CRM 시스템이 존재하고, 많은 기업들이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 CRM 시스템의 범위는 지금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CRM 시스템은 마케팅이나 영업지원, BS(Before Service)나 AS(After Service)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의 다양한 분야를 포괄해 가고 있다. 하지만, CRM의 개념이 포괄적이라 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주택건설업체와 같은 경우는 AS를 중심으로 CRM을 구축해야 한다. 부동산의 특성상 매매 대금이 매우 크고 개인이 잦은 거래를 발생시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파트를 구입한 고객의 경우, 한 번의 구매를 발생시키고 다음 구매를 발생시킬 때까지는 보통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고객과 건설업체가 빈번히 접촉할 수 있는 경로는 하자보수, 즉 AS가 필요할 때이다. 건설업체는 이들의 요구사항과 그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다음 번 아파트 건설에 반영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서 얻기 힘든 자료를 자연스럽게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재구매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물론 BS와 같은 다른 CRM 시스템도 도움이 되겠지만, 충분한 ROI(Return on Investment : 투자 대비 이익률)를 챙길 수 있는지는 숙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어느 부문이 득이 되고 우선 순위가 높은지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는 어떤 분야의 CRM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많은 기업이 자신의 핵심역량을 인식하지 못해 스스로 구축한 CRM 시스템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모든 고객이 기업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흔히 얘기하는 20/80의 법칙이다. 20%의 고객이 80%의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2%의 고객이 수익의 40%를 점유하는 반면에 90%의 고객은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기업이 모든 고객을 수익고객으로 전환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기존의 고객을 강제로 퇴출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 지닌 업무나 서비스 역량을 수익고객에게 우선순위로 배정하면 수익고객의 만족도 향상과 더불어 비수익 고객의 자연스러운 탈퇴도 유도할 수 있다.
● 사후 정착이 더 중요하다
CRMGuru의 설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CRM은 단순히 IT 시스템의 도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IT 시스템은 기업에서 진행되는 실제 경영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구현한 것이다.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효율적 경영 프로세스 관리를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IT로 구현된 프로세스를 진행시킨다 하여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CRM을 운영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춰야 한다. CRM 시스템을 구축하기 이전의 목적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새로운 형태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므로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조직도 변화해야 한다.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기업의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되었고 성과가 어떠한지 평가해야 한다.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정량적으로 나타나게 됨으로써, 빈약한 자료로 평가하지 못했던 여러 활동들을 개인 단위로까지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프로세스를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체계도 필요하다. 즉, 조직이 제시한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 형식에 따라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Nissan 자동차의 자회사인 Nissan Motor Acceptance Corporation(NMAC)은 CRM 시스템을 도입한지 1년 만에 투자비용의 400%에 달하는 ROI를 달성했다. NMAC는 기업 내에서 개선할 여지가 있는 분야로써 고객상담센터를 지목하였다. 구성원들은 시간제 근로자들로서, NMAC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지속하고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였다. 편중되는 작업량에 따른 인력 수급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혁신적인 업무 구조 개선을 통해 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냈다. 그 결과 연간 70,000 달러 이상의 무료 통화료 절감을 이루었고, 정확한 작업량 예측을 통한 노동력 최적화로 100,000 달러에 달하는 노동비용을 절감하였다.
NMAC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일괄적인 지침으로 해석하여 저항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구성원들 개개인의 양보와 참여를 이끌어 내어 안정적인 고객상담센터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 정보관리 프로세스를 충실히 하라
많은 기업들이 CRM을 단순히 제공된 툴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CRM은 관계마케팅, 일대일 마케팅이 근간이다. 이것은 고객을 더 많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CRM도 근본적으로는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에 대한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마케팅, 영업 및 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CRM을 위한 고객정보관리는 <그림>과 같이 고객 정보를 획득, 분석, 공유, 활용, 평가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즉, 고객에 대한 정보를 얻고 분석한 후, 조직 내에서 그 정보를 공유해 필요한 곳에 활용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여 조직에 내재화 하는 싸이클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고객정보 관리 프로세스를 거칠 때, 고객에 대한 지식이 창출되고, 고객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다.
손꼽히는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은 모든 서비스 프로그램을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고객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획득하도록 한다. 고객의 기대 수준, 고객 만족도, 광고에 대한 반응들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고객 패널이나 고객 포럼도 적극 활용하였다. 모든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하나의 접점으로 모여진 ‘고객의 소리’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여기서 활용된 정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다시 얻어 고객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폭스바겐은 이러한 형태로 고객정보관리 프로세스의 선순환을 얻어내어 고객지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의 사회이고 지식의 경제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인식하고 다양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생활 문제와 보안 문제로 인해 앞으로는 기업이 고객 정보를 획득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거나 비용이 증가하여 지식을 획득하는데 한계가 발생할 것이다. 현재 고객정보를 지식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거나 단순히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에만 활용하는 기업은 앞으로 많은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CRM을 활성화 하고 고객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여 고객을 학습해야 한다.
2001년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은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크게 증폭시켰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중대한 요인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업무 효율화를 위해 도입하였던 IT 분야에 대한 투자가 첫번째 보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신규투자뿐만 아니라 기존의 IT 인프라에 대한 유지 및 보수와 관련된 투자마저 보류 대상이 되었다. 이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 고객관계관리) 시스템 부문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1990년대부터 빠른 성장을 지속해왔던 CRM 시장은 인터넷 거품 붕괴와 더불어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미국의 경기지표가 호전되면서, 기업들의 IT 분야에 대한 투자도 다시 서서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Merrill Lynch가 최근 상위 50개 IT기업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 정도의 기업이 IT 예산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응답했고, AMR Research는 경기가 회복된 올해 기업들이 CRM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지난해 보다 10억 달러 늘려 약 108억 달러에 이르는 CRM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왜 고객관계관리인가
세계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산재한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고객 관리를 위한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 말에 부풀어 올랐던 IT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기업, 특히 인터넷에 기반한 기업들이 상당수 사라졌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은 IT 거품 붕괴와는 상관 없이 혹독한 시절을 뚫고 나와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터넷 기업으로 우뚝 섰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아마존닷컴과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졌으나 IT 거품과 함께 사라졌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마존닷컴이 거품경제에서도 내실을 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존닷컴에겐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뒷받침 되어 있었다. 즉, 아마존닷컴이 단순히 고객에게 싼 값에 제품을 제공한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아마존닷컴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는 다양한 제품을 저가로 추천함으로써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결과를 수치로 보게 되면 더욱 명확하다. 일반적인 인터넷 상점의 고객 재방문율이 평균 3~5%에 그칠 때, 아마존닷컴의 재방문율은 무려 15~25%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방문율의 달성은 아마존닷컴이 고객의 니즈를 잘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아마존닷컴의 사례는 기술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결정하는 주요인은 고객과의 관계 구축이며, 기술은 그 수단 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CRM은 불가능한가?
이러한 고객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들이 흔히 취하는 방법은 CRM을 위한 IT 시스템의 도입이다. 그러나 Gartner Group과 Meta Group의 보고서는 2006년까지 기업에 도입된 CRM 시스템의 반 수 이상이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작으로 분류될 수 밖에 없고 모든 CRM 프로젝트의 55~75% 가량이 해당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런 비관적인 수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CRM 프로젝트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Polaroid사는 첨단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CRM 시스템을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CRM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전조사 결과, Polaroid사는 50달러에서 150달러 사이의 디지털 제품을 판매하면서 제품당 5달러에 달하는 고객지원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크게는 판매가의 10%에 달하는 고객지원비용이 지출되고 있던 것이다. 이에 Polaroid사는 모든 부분의 CRM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지 않고, 우선 고객지식 기반의 질의응답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이후 2백만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이나 문의사항 같은 고객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무려 18개월 동안 취합하였다. 이렇게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모든 정보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고객이 이메일로 문의하는 질문의 98%에 대해 자동응답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3년 동안 연간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화 문의자들이 이메일을 통해 문의를 하게 되면서, 고객지원비용은 제품 당 1.6달러로 떨어지게 되었다. Polaroid사는 고객 응대를 위한 시스템을 짧은 시간에 구축하기는 했지만, 18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정보를 취합하여 DB로 구축함으로써 이메일만으로도 고객이 스스로 문제해결이 가능하도록 효율적인 CRM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만일 단순히 질의응답 시스템만을 구축하고 18개월이란 긴 시간을 들여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보 DB를 구축하지 않았다면, Polaroid사의 CRM 시스템 구축은 실패작이 되었을 것이다. Polaroid사는 시스템 구축 이전부터 첨단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행태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하였고, Polaroid사가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잘 파악하였다. Polaroid사는 질의응답 시스템 구축으로 고객들의 제품 정보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고객들의 새로운 정보도 취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CRM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Polaroid사와 같은 성공적인 사례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고객에게 전해줄 가치를 설정하라
2003년 미국에서 실시된 CRMGuru의 설문에 의하면 36%의 응답자가 CRM은 고객을 기업의 중심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고, 23%의 응답자가 고객과의 윈-윈 관계 설정이라 답하였다. 이에 반해 CRM을 고객 관련 프로세스의 자동화라 응답한 비율은 9%에 그쳤다. 또 Morgan Stanley에 따르면, 기업들은 한 번의 거래를 위해서 고객과 15~20회 정도의 교류를 발생시킨다. 기업은 단기적이거나 일회적인 관계가 아닌 장기적이고 상호교환적인 관계형성을 CRM의 목표로 잡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Michigan National 은행의 Doug Andrews 이사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고객의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실패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CRM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들을 관리하게 됨으로써 고객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이익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고객 가치를 위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기업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가 기업의 중심에 있도록 하고 고객과의 상호교류를 지속시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자신의 고객은 누구이며, 자신에게 고객이 어떤 가치를 원하고 있고, 자신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 우선 순위를 정하라
이미 다양한 종류의 CRM 시스템이 존재하고, 많은 기업들이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 CRM 시스템의 범위는 지금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CRM 시스템은 마케팅이나 영업지원, BS(Before Service)나 AS(After Service)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의 다양한 분야를 포괄해 가고 있다. 하지만, CRM의 개념이 포괄적이라 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주택건설업체와 같은 경우는 AS를 중심으로 CRM을 구축해야 한다. 부동산의 특성상 매매 대금이 매우 크고 개인이 잦은 거래를 발생시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파트를 구입한 고객의 경우, 한 번의 구매를 발생시키고 다음 구매를 발생시킬 때까지는 보통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고객과 건설업체가 빈번히 접촉할 수 있는 경로는 하자보수, 즉 AS가 필요할 때이다. 건설업체는 이들의 요구사항과 그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다음 번 아파트 건설에 반영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서 얻기 힘든 자료를 자연스럽게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재구매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물론 BS와 같은 다른 CRM 시스템도 도움이 되겠지만, 충분한 ROI(Return on Investment : 투자 대비 이익률)를 챙길 수 있는지는 숙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어느 부문이 득이 되고 우선 순위가 높은지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는 어떤 분야의 CRM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많은 기업이 자신의 핵심역량을 인식하지 못해 스스로 구축한 CRM 시스템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모든 고객이 기업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흔히 얘기하는 20/80의 법칙이다. 20%의 고객이 80%의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2%의 고객이 수익의 40%를 점유하는 반면에 90%의 고객은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기업이 모든 고객을 수익고객으로 전환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기존의 고객을 강제로 퇴출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 지닌 업무나 서비스 역량을 수익고객에게 우선순위로 배정하면 수익고객의 만족도 향상과 더불어 비수익 고객의 자연스러운 탈퇴도 유도할 수 있다.
● 사후 정착이 더 중요하다
CRMGuru의 설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CRM은 단순히 IT 시스템의 도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IT 시스템은 기업에서 진행되는 실제 경영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구현한 것이다.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효율적 경영 프로세스 관리를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IT로 구현된 프로세스를 진행시킨다 하여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CRM을 운영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춰야 한다. CRM 시스템을 구축하기 이전의 목적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새로운 형태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므로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조직도 변화해야 한다.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기업의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되었고 성과가 어떠한지 평가해야 한다.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정량적으로 나타나게 됨으로써, 빈약한 자료로 평가하지 못했던 여러 활동들을 개인 단위로까지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프로세스를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체계도 필요하다. 즉, 조직이 제시한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 형식에 따라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Nissan 자동차의 자회사인 Nissan Motor Acceptance Corporation(NMAC)은 CRM 시스템을 도입한지 1년 만에 투자비용의 400%에 달하는 ROI를 달성했다. NMAC는 기업 내에서 개선할 여지가 있는 분야로써 고객상담센터를 지목하였다. 구성원들은 시간제 근로자들로서, NMAC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지속하고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였다. 편중되는 작업량에 따른 인력 수급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혁신적인 업무 구조 개선을 통해 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냈다. 그 결과 연간 70,000 달러 이상의 무료 통화료 절감을 이루었고, 정확한 작업량 예측을 통한 노동력 최적화로 100,000 달러에 달하는 노동비용을 절감하였다.
NMAC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일괄적인 지침으로 해석하여 저항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구성원들 개개인의 양보와 참여를 이끌어 내어 안정적인 고객상담센터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 정보관리 프로세스를 충실히 하라
많은 기업들이 CRM을 단순히 제공된 툴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CRM은 관계마케팅, 일대일 마케팅이 근간이다. 이것은 고객을 더 많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CRM도 근본적으로는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에 대한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마케팅, 영업 및 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CRM을 위한 고객정보관리는 <그림>과 같이 고객 정보를 획득, 분석, 공유, 활용, 평가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즉, 고객에 대한 정보를 얻고 분석한 후, 조직 내에서 그 정보를 공유해 필요한 곳에 활용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여 조직에 내재화 하는 싸이클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고객정보 관리 프로세스를 거칠 때, 고객에 대한 지식이 창출되고, 고객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다.
손꼽히는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은 모든 서비스 프로그램을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고객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획득하도록 한다. 고객의 기대 수준, 고객 만족도, 광고에 대한 반응들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고객 패널이나 고객 포럼도 적극 활용하였다. 모든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하나의 접점으로 모여진 ‘고객의 소리’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여기서 활용된 정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다시 얻어 고객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폭스바겐은 이러한 형태로 고객정보관리 프로세스의 선순환을 얻어내어 고객지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의 사회이고 지식의 경제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인식하고 다양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생활 문제와 보안 문제로 인해 앞으로는 기업이 고객 정보를 획득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거나 비용이 증가하여 지식을 획득하는데 한계가 발생할 것이다. 현재 고객정보를 지식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거나 단순히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에만 활용하는 기업은 앞으로 많은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CRM을 활성화 하고 고객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여 고객을 학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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