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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iz전략마케팅

우리나라는 'SW 강국'인가?

by 누피짱 2008. 5. 7.



요즘만큼 지면 상에 소프트웨어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프트웨어 진흥을 전담했던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업계가 느낀 긴장 분위기는 새 대통령이 장관 워크샵 자리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인의 강연을 듣고 각 부처가 산업과 IT의 결합을 정책으로 내세우는 등 정부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면서 반전되었다.

이런 정부의 관심에 발맞춰 IT 전문 언론들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야기들을 제각기 한 마디씩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왠지 모르는 공허함이 가슴 한 켠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열심히 떠들어봐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 때문일까.

이 모두가 조금씩 원인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소프트웨어는 우리 나라 미래에 있어 너무 중요하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 없이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외양간을 고치는 소 잃은 주인의 푸념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강국이란

먼저 우리는 소프트웨어 강국의 모습에 공감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 소프트웨어 강국은 소프트웨어를 잘 쓰는 나라일까, 아니면 많이 만드는 나라일까, 그도 아니면 소프트웨어 종사자가 많은 나라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세계 몇 나라로 여행을 떠나보자.

우선 이웃나라 경제대국 일본으로 가보자. 일본은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10배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 소프트웨어 기업 랭킹 상위에 후지쯔(10위), 히다찌(20위), NEC(33위)와 같은 기업들을 올려 놓고 있다. 일본의 국민 1인당 평균 소프트웨어 지출은 한국의 4배에 달한다.

이와 같은 일본을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대부분은 일본을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얘기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 소프트웨어 수출액의 약 2배 정도의 저조한 소프트웨어 수출 실적을 가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수입도 적은 편이 아니다.

이것은 일본의 거대 내수시장을 후지쯔와 같은 자국 기업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OS나 DBMS와 같은 필수 소프트웨어는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지쯔나 히다찌의 소프트웨어 매출은 거의 모두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본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인 사람을 많은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과 관련한 일본 비자의 4분의 3이 소프트웨어 관련 비자라는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음은 기수를 돌려 유럽의 떠오르는 별, 아일랜드로 가보자. 아일랜드는 8%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몇 년간 이어오며 단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을 넘어 서는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여기에는 소프트웨어 수출이 큰 역할을 했는데, 아일랜드 소프트웨어 수출액은 한국의 12배에 이른다. 아일랜드는 유럽 소프트웨어의 60%를 공급하는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수출 대국이다.

그럼 이런 아일랜드를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하긴 어렵다.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소프트웨어 중 수출분을 제외하면 내수시장은 한국 시장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활용면에서는 그리 진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아일랜드 소프트웨어 생산의 90%를 외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하청구조 때문이다. 주로 외산 소프트웨어를 가져다가 세계 각국에 맞게 수정하는 것(localization)에 부가가치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자체 고급 소프트웨어 기술이 부재하며, 세계적인 아일랜드 소프트웨어 기업도 없다.

이제 인도로 가보자. 인도는 50만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학은 매년 10만명의 IT 인력을 배출한다. 인포시스, 위프로, 타타 컨설턴시와 같은 걸출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또 미국 실리콘 벨리의 수많은 소프트웨어 벤처들의 개발 요직에는 인도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인도는 소프트웨어 강국일까? 소프트웨어 내수시장이 거의 없는 인도 역시 아일랜드와 같은 수출 중심국이다. 아일랜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출품이 완성된 소프트웨어가 아닌 서비스, 즉 소프트웨어 인력의 수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값싼 노동력 덕분에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헬프데스크 아웃소싱으로 부상한 인도는 태생적으로 IT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분야 전문가보다는 코딩 중심의 제너럴리스트 위주의 인력 구성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IT서비스 기업들은 많지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도, 아일랜드, 일본 모두 세계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모두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하기엔 2% 부족하다. 그럼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소프트웨어 강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까? 답은 좀 싱겁다. 미국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독일이다.

미국과 독일은 각각 세계 1위, 3위의 소프트웨어 수출국이면서 소프트웨어 수출입 수지가 흑자인 몇 안 되는 국가이다. 또한 자국의 소프트웨어 시장규모가 세계 1, 2위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와 활용도 매우 높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마이크로소프트, IBM, 오라클, SAP와 같은 세계 1위부터 4위의 걸출한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거대한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능력을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기업들이다.

가상 여행을 통해 우리는 소프트웨어 강국의 몇 가지 요건들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자국의 소프트웨어 수입을 대체하고 전 세계로 수출을 담당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 있다.
둘째, 국가 전체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이해하고 활용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셋째, 강력한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 허약한 소프트웨어 인프라

한국은 소프트웨어 강국의 세 가지 요건에 있어 모두 열위에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요건이 이미 어느 정도 인지된 문제라면, 가장 중요하고 근간이 되는 세번째,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과 대안 연구가 부족하다.

한 번 반짝 빛나는 성과는 어쩌면 운 좋게 만들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미래 한국의 핵심 키워드로 소프트웨어 강국을 꿈꾼다면 지속적인 성장의 양분을 공급하는 양질의 토양은 필수적이다. 소프트웨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유일한 인프라는 사람이다.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비옥한 토양이 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국내 12만 소프트웨어인의 대부분은 IT서비스 개발자 신분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인도나 중국 개발자와 다를 바 없는 제너럴리스트들이다. 게임 개발자를 제외한 나머지 패키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기술 난이도가 낮은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에 집중되어 있다.

글로벌 개발 커뮤니티나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한국에는 고수가 거의 없다. 고수가 없으니 전문 지식도 부족하다. 대학에도, 커뮤니티에도, 심지어 기업에도 쌓여 있는 고급 지식이 별로 없다. 이러니 소프트웨어 업계에 들어선 초보 개발자들에겐 비빌 언덕이 없다. 항상 밑바닥부터다. 그나마 오픈소스를 들여다 보는 개발자들도 생산하지 않는 일방적인 소비자일 뿐이다.

이렇게 코딩 개발자 중심의 편향된 인력 구조로는 소프트웨어 강국은 요원하다. 국내 소프트웨어인들이 스스로 튼튼한 인프라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전문분야를 선택하고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지금의 개발자 신세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가 움직이지 않는데 원하는 여건이 먼저 움직여 오는 경우는 없다.

또 실력을 쌓은 자들은 중원으로 나아가 자신의 실력을 선보여야 한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 개발자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소프트웨어 하면 한국 전문가를 떠올릴 정도로 고수들이 넘쳐나야 한다.

여기서 영어 얘기를 잠깐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우리 나라 개발자들에게서 영어 때문에 국제적 커뮤니티 활동은 못하겠다거나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취직을 포기했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영어 때문에 글로벌 커뮤니티에서의 활동 범위도 고작 소스를 다운하고 혼자 해독해 보는 정도로 한정된다. 세계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무슨 이슈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어떤 의견이 있는지 도통 의사소통이 안 된다.

인도, 아일랜드, 독일, 이스라엘 등 주요 소프트웨어 생산국들은 모두 영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모든 개발자들은 영어로 의사소통한다.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 고수들은 모두 영어에 능통하다.

세계인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적어도 글로는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에 대한 필요를 못 느끼는 한국의 개발자들은 아직 우물 안 개구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가 튼실한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충분조건이 될 순 없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

한국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은 앞서 이야기했듯 국내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인프라를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양으로는 인도나 중국을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보다 적은 수의 글로벌 스페셜리스트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학의 교육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컴퓨터를 전공한 학부 졸업생들조차 소프트웨어 기업에 입사해 프로그래밍 기초부터 다시 배운다. 대학 교육의 전문성과 도전정신이 시장의 요구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 자체가 거대한 교육 시스템이다. 소규모 기업들은 생존 때문에 교육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또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보상수준과 브랜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큰 규모의 기업이 제공하는 교육과 실전 경험은 여느 교육 기관, 교육 프로그램보다 낫다.

더 큰 시장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써야 한다. 많아진 사업 기회는 더 많은 소프트웨어인에게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하고, 자국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의 탄생 확률을 높인다. 특히 난이도가 높고 신기술이 적용되는 모험 사업은 사업의 성패와 상관없이 사회에 큰 학습기회를 제공한다.

벤처다운 벤처가 생겨야 한다. 외부 투자자금을 가지고 신기술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소규모 전문 벤처들이 수없이 탄생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1.5배 기업가치를 지닌 구글은 대학의 모험적인 신기술과 사회의 투자자본이 만난 전형적인 벤처 성공 사례다.

만약 국내 리소스만으로 양질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다면 세계로 눈을 돌려볼 수도 있다. 전 세계에는 실력 있는 소프트웨어 인재들이 많다. 이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소프트웨어 브랜드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다.

세계 소프트웨어 리소스를 활용하는 최근 사례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아이폰 개발도구 공개다. 구글은 전 세계에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기기용 소프트웨어 개발 패키지를 무료로 내놓았다. 구글이라는 브랜드와 100억원의 상금으로 전 세계 개발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애플도 아이폰에서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공개했다. 벌써부터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제 휴대폰은 하드웨어 경쟁에서 디자인 경쟁을 넘어, 소프트웨어 경쟁이 되고 있다. 터치 스크린이나 회전 인식 기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휴대폰 전면을 LCD로 채운 수려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 커진 화면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승부의 관건이 된 것이다.



국내 휴대폰사들은 애플이 가진 강력한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없다. 애플 아이폰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개발자로부터 모은 수 백, 수 천 개의 화려하고 유용한 소프트웨어와 게임들과 함께 한국에 상륙한다면 한국 휴대폰 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

안드로이드 컨소시엄(OHA; Open Handset Alliance)에서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 휴대폰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 소프트웨어가 동작하게 된다는 의미다. 국내 휴대폰사들은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글에게서 빌리는 셈이다. 그 대가로 국내 휴대폰사들은 소프트웨어가 가져다 줄 엄청난 고부가가치의 수익을 고스란히 외국의 손에 넘겨주는 값비싼 대여료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강국을 위해 우리가 할 일

진정한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인프라와 이를 통해 만들어진 기술이 국내 산업에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또 세계적으로 판매되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어떻게 강력하고 열정적인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백만 페르시아 군대에 맞선 300명의 충성도 높은 스파르타인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 느슨하지만 풍부한 리소스를 동원한 인해전술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와 국민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 결정과 실행에 가장 큰 역할은 우리 기업들과 소프트웨어인들에게 달려있다. 소프트웨어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미래를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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