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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재테크

거침없던 '큰손' 푼돈에 연연하다

by 누피짱 2008. 8. 12.
얼마 전 미국의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페니(penny ·영국의 화폐 단위로 우리 돈 약 20원)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절약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줄이기 등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 속 습관들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푼돈은 '취급 받지 못하는' 돈이었다. 땅에 떨어뜨린 100원짜리 동전 다섯 개 중 한 번에 눈에 띄지 않은 한 개는 너무 쉽게 버려졌다.

직장인 최정환(31)씨는 며칠 전 서랍에 넣어 둔 돼지저금통을 꺼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동전을 모으기 위해서다. 최씨는 "가방 여기저기에 동전이 가득해 한 번씩 모으면 두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며 "무조건 큰돈부터 내미는 버릇 때문에 씀씀이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잔돈 관리가 부자 되는 지름길이라는 말을 이제야 실감할 것 같다고 전했다.

3년차 택시기사인 J씨는 "기분 탓인지 요금이 4800원 나오면 200원은 그냥 두시라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5100원이 나와도 5000원만 내고 내리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기사, 승객 모두에게 100원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어 그는 "예전에는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자는 생각으로 비싼 메뉴를 골랐는데 요즘은 반찬 두어 가지 적고 서비스가 좀 안 좋더라도 한 2000원 덜 줘도 되는 기사식당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전업주부인 성혜영(43)씨는 요즘 대형 마트의 자체 브랜드(PL, PB) 상품을 애용한다. 싸게 사는 것뿐 아니라 다른 상품 값과의 차이만큼 과자통에 따로 돈을 모은다. 이마트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PL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9.7%, 올해 1월 11.3%에서 6월엔 19.7%까지 상승했다. 특히 잘 팔리는 PL 상품은 생수, 우유, 콜라, 인스턴트 밥 같은 식품류다.

생수는 같은 제품군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2007년 10월 13%에서 2008년 6월 32%로 올랐고, 우유는 같은 기간 4%에서 14%로 올랐다. 황종순 이마트 과장은 "품질 만족도도 높지만 다른 상품보다 20~25% 저렴한 것이 매출 상승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마트의 상황도 비슷하다. 홈플러스의 PB 상품 전체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40% 정도 증가했다. 이곳의 인기 상품은 라면, 두부, 생수, 고추장, 화장지다. 또 외식이 줄고 쌀값이 오르면서 쌀(PB)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2% 늘었고, 낱개 포장하거나 커팅(cutting)한 상품이 잘 팔린다.

50원을 돌려받으려고 비닐봉지를 반납하는 고객 비율도 지난해 말 13%에서 올해 1월 14%, 6월 15% 정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심정희(51)씨는 평소 재활용품을 비닐봉지에 담아 분류하는데 반납이 안 되는 비닐봉지만 사용한다.

심씨는 마트에 갈 때 장바구니를 가져가 할인받거나 포인트를 적립하고, 장바구니 없이 쇼핑 카트를 이용할 때는 카트에 꽂아 넣은 100원을 꼭 챙긴다. 또 장을 볼 때 계산기를 가져가 같은 제품이라도 용량에 따른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 후 구입한다.

물건을 살 때 장바구니 외에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현금영수증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박명준(35)씨는 "현금영수증을 모으면 상당한 액수를 공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잘 하지 못했다"며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절약습관을 들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물가 시대에 박씨처럼 현금영수증을 챙기게 된 이들이 늘고 있다. 편의점 훼미리마트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8.9% 늘었다.

특히 물가상승률이 4.1%에서 4.9%로 급격히 오른 5월의 경우 전월 대비 상승률이 9.8%에 이른다. 물건 값의 15%를 할인해 주는 SK텔레콤 멤버십카드 이용 건수와 OK캐시백 적립건수도 각각 48.8%, 57% 상승했다.

마일리지 적립과 신용카드 제휴 할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줄줄 새는 푼돈을 막아줄 최고의 도구다. 고유가 시대에 주유 할인 신용카드는 기본이다. 주유 카드마다 정해진 할인 날짜를 지켜서 주유하면 ℓ당 100원 할인 혹은 적립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직접 기름을 넣는 셀프주유소를 이용하면 주유 시간이 두 배 정도 걸리는 대신 ℓ당 약 50원을 아낄 수 있다.

가계에서 큰 부담을 차지하는 통신비도 이동통신회사와 제휴한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상당한 액수가 줄어든다.

이 외에 휴대전화 통신비를 일정 금액 이상 쓰면 교통 요금이 절약되는 교통 할인 신용카드, 대형 마트에서 일정 금액 이상 구입하면 할인해 주는 신용카드가 있고, 보험회사와 제휴한 신용카드로 보험료를 결제하면 보험료가 최대 3만원까지 줄어든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규칙적으로 들르는 곳이라면 꼭 마일리지를 적립하도록 한다. '언제 또 오겠어'라고 생각하는 사이 좋은 서비스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돈이나 마일리지를 모아야만 절약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값이 올라 고물 값이 뛰자 밤에만 고물을 모으는 '투잡 고물상'이 등장했다.

대구에 사는 주부 P씨는 낮에 마트에서 일하는데, 작년 말부터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밤이 되면 리어카를 매달아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도는 것. P씨가 밤 11시부터 세 시간 동안 빈 병, 폐지, 고철덩어리 등을 주워 버는 부수입은 하룻밤 1만~2만원이다.

다양한 할인서비스 상품도 인기다. 초고속인터넷 요금 최대 60%, 휴대전화 기본료를 최대 50% 할인해주는 KT 메가패스와 KTF 휴대전화를 결합한 서비스 가입자 수는 올해 4월 50만9900여 명에서 7월 16일 기준 75만7678명으로 늘었다.

KT 관계자는 "다른 문제로 고객을 방문했다 결합서비스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설명을 들은 뒤 즉석에서 가입하는 고객도 많다"고 전했다. 물론 약정 서비스 같은 세부사항을 잘 따져보고 가입해야 한다.

집에서 새는 푼돈이 밖에서 안 샐까.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에너지를 흘려 보내는 동안 한 푼 두 푼 돈도 샌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에어컨을 하루 한 시간 덜 틀면 한 달에 5000원을 아낄 수 있고, 온도를 1도 높이면 770원이 절약된다.

또 냉장고의 설정 온도를 강에서 중으로 한 단계 내리면 한 달에 500원을 더 번다. TV를 하루 한 시간 덜 보면 400원, 컴퓨터 대기 시간을 한 시간 줄이면 300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 오디오, 휴대전화 충전기를 사용 안 할 때 플러그를 뽑아두면 한 달에 각각 600원, 230원을 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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