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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리더십

'이산'을 보며 배워보는 처세술

by 누피짱 2008. 4. 22.
드라마 이산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바로 현대 한국의 현실이 적절히 투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뿌리 내린 지배층 중심의 사회구조, 어딘가 개혁이 필요하지만 강력한 지배층의 저항, 어설픈 군주의 개혁 시도, 그리고 실감나는 처세술, 즉 정치적 권모술수.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절감하고 있는 답답함과 좌절 그리고 특히 이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처세술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조은미 기자는 이 드라마의 핵심을 처세술에서 찾았는데, 이는 매우 정확한 지적으로 보인다. 드라마 PD와 작가는 그 체세술을 통해 가장 한국적이고 재미있는 정치 드라마를 만드려고 했던 것 같다. 이들 또한 이런 모습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정치와 현실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이산이 현실을 닮았다는 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공감을 하고 있고, 이 드라마를 통해 처세술을 배우고 있는 현실이 바로 한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국인들은 가치/철학/이념의 빈곤과 공황속에서 살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에서 수입한 성리학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성리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자 이제는 서구에서 출발한 근대성이 식민지배의 형식을 통해 유입되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인들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결코 자신의 것으로 만든적도 없고, 자신만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새로이 만들어 낸 적이 없다.

우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그러면 어떻게 드라마속의 처세술 정치, 권모술수를 그렇게 실감나게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공감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권모술수의 현실/드라마(결국은 드라마가 현실이겠지만)을 보면 분노하는 것이 정상이다. 현실을 다시 설명하고 대안이 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찾아나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처세술에서 공감을 하고 있다. 나도 그런 처세술을 통해 현실을 해쳐나가야겠다는 교훈을 배운다. 이것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행동이다. 이렇게 자신들은 민주주의와 전혀 관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 보거나 어떻게 바꿔보려고 생각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의 사상적 빈곤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일등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행복할 수도 없다.

이러한 국민들이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서만 공감하고 있으며,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드라마 - 대통령 선거 -에 대해 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과연 누가 이길까?

어떤 이념이, 어떤 정당성이, 그 결과 어떤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등장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기느냐와 그 처세술의 드라마에만 관심을 갖는다.

고작 88만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서 옆에끼고 갈고 닦은 처세술로 월급 100만원을 돌파했다고 좋아할 사람들이다. 그래봐야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민주주의가 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그저 눈 앞의 어려움을 처세술로 극복해내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처세술로 말하면 자신들보다 기득권층의 처세술은 더욱 화려하고 찬란하다는 것은 죽어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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