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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프리

로또 1등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by 누피짱 2008. 4. 24.




확률상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이다. 수학자들은 "벼락을 맞아 응급실에 실려 가는 도중에 또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더 어려운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당첨금을 받아 가기 마련인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가져갔을까. 최근 한 시사주간지에서 당첨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설문 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를 분석해 보니 1등 당첨자의 평균 모델은 '2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 3040세대 기혼남'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박 행운을 쥔 사람은 남자가 77%로 압도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즈니스맨들의 충동구매가 여전히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월 소득 수준이 5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에서도 당첨자가 많이 나왔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구매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엔 무리가 따른다. 전업 주부나 학생의 비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 다만 고소득자의 로또 구매 비율은 상대적으로 중간층에 비해 좀 낮은 편이다.



인구 분포상 1등 당첨자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나왔고, 지금껏 가장 많은 당첨자를 배출한 판매점도 서울에 있다. 로또쟁이들의 로망이 된 명당은 바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상가의 '스파'다. 지금까지 무려 8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어지간한 판매점들은 2등 당첨자 배출 안내 간판을 걸어놓는데 대단한 숫자다. '스파'는 작년까지 충남 홍성읍의 '천하명당 복권방'과 공동 1위였지만 올해 초에도 당첨자를 배출해 단독 선두가 됐다. 홍성 이 복권방은 언론 보도로 유명세를 타면서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3명 이상의 당첨자를 배출한 복권방은 전국 각지에 고루 흩어져 있다. 부산 범일동과 청주 가경동, 울산 달동, 수원 원천동, 용인시 유방동 등이다.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는 입소문에 구매자들이 몰려 당첨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 재미있는 것은 범일동 판매점 이름도 홍성과 마찬가지로 '천하명당'이다.



당첨금이 무한 이월되던 시행 초기에는 구매자들의 심리적 기대값은 1000억원에 육박했다. 실제 유력 일간지에서도 사회면 톱 기사로 '로또 광풍, 1등 당첨금 1천억?'이라는 기사를 게재했었다. 역대 로또 당첨금 중 최고액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최고기록은 지난 2003년 4월, 19회차 추첨에서 기록한 407억원이다. 당시 1등 당첨자는 현직 경찰관인 박모씨. 그는 세금을 제하고 317억원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소 당첨금은 지난 2006년 9월 196회차. 이때의 당첨금은 고작(?) 7억 1000만원이었다. 세금을 감안하면 수령액은 5억 6000만원. 물론 아주 큰돈이지만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접하고 스스로 기대했던 당첨금과 차이가 있어 실망했을 확률이 높다. 2003년 4월 26일 21회차에서는 무려 23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와서 화제가 됐다. 만일 단독 1위였다면 184억을 수령했겠지만 이들은 7억 9000만원씩 나눠 가지며 입맛을 다셔야 했다.





지난 2003년 407억원의 잭팟을 터뜨렸던 박운성씨(가명)는 역대 최고액 당첨자다. 그는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경사로 일하던 시절 우연히 로또를 구입해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세웠다. '400억의 사나이'로 주목받았던 박씨는 당첨금 수령 후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거절하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심경을 밝혔었다. 당시 박씨는 "뜻밖의 거액에 살림살이는 훨씬 나아졌지만 불편하고 괴로운 일도 많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불우이웃돕기로 20억원, 아이들의 모교에 각 2억원씩 총 32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더니 '나도 돈을 빌려 달라'거나 '돈이 안 되면 보증이라도 서 달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왔단다. 노모의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 가족 모두 전화번호를 바꾸고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까지 해야 했다. 초등학생 자녀의 친구들은 "너네 로또 가족이지?" 하며 놀려대는 통에 아이들이 입은 상처도 컸다. 결국 이들 가족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매주 5000원 내외로 꾸준히 로또를 구매하던 개인택시 기사 김기태씨(가명)는 지난 2005년 행운 번호만 빼고 나머지 숫자 6개를 모두 맞춰 2등에 당첨됐다. 이월된 당첨금이 많이 쌓여 있어 2등인데도 1억원 넘는 당첨금이 배당됐다. 보통 사람은 평생 살면서 현금으로 만져볼 일이 한 번도 없을 만큼 큰돈이다. 하지만 김씨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한 달 넘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심지어 스트레스성 위염까지 걸렸다. "숫자 한 개만 더 맞췄으면 수십억을 더 벌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를 괴롭힌 것. 주위에서는 "1억이면 됐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냐"며 혀를 찼지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놓친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단다. 김씨는 그때부터 한 달에 수십만원씩 로또를 사들이지만 그 뒤로는 변변한 당첨금을 챙겨 본 기억이 없다. 당첨금 중 상당액을 로또 사는 데 써버렸는데도 아직 1등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강원도 홍천에 사는 한모씨(40)가 경찰에 이색 진정서를 접수했다. 내용인즉슨, 자신이 1등 당첨자로 헛소문이 나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으니 소문의 진원지를 밝히고 당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요구한 것. 당시 한 언론 보도에 로또 1등 당첨자가 '홍천에 사는 30대 남자 한모씨'라고 보도됐는데 본의 아니게 지역과 성이 비슷해 오해를 샀다. 게다가 한씨가 업종 변경을 위해 한동안 운영하던 제과점을 폐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첨금 챙겨 이민 간다"는 내용으로 포장돼 소문이 확대됐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은 물론이고 각종 기부 단체 등에서 하루에 30~40통씩 전화를 걸고 찾아왔단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친척이라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일도 예사였다. 당사자 한씨는 헛소문 때문에 자녀들의 안전까지 걱정하게 돼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로또라고는 구경도 안 해 봤던 한씨에게는 참 웃지 못할 사연이었다.



경남 울산의 한 평범한 샐러리맨은 우연히 복권을 샀다가 2등에 당첨돼 3100만원의 당첨금을 손에 쥐었다. 넉넉지 않은 서민 가정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로또 당첨되면 너 1000만원 줄게"라며 입버릇처럼 말했던 친구에게 정말로 거금을 쥐어줬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의 살림살이를 위해서였다. 게다가 나머지 2100만원은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여자 어린이에게 선뜻 기부했다. 재미 삼아 복권을 샀는데 갑자기 '큰돈(?)'이 손에 들어오니 내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어 좋은 데 쓰기로 결심했다는 것. 한 동짜리 허름한 맨션에 사는 소시민이지만 나눔의 정만큼은 누구보다 큰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수십억 대박 당첨자보다 내가 더 행복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취재_이한 기자 사진_중앙포토

출처 :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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